슬프거나 화가 난다는 건 평소보다 감정이 동요한다는 뜻과 같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출한다. 슬퍼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목이 쉬어라 울기도 하고, 화가 난 상태에서는 분노에 찬 고함을 지르거나 주먹이나 발로 벽을 차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내가 타인의 슬픔에 훨씬 더 깊게 공감했던 순간들은, 자신의 슬픔을 담담히 풀어놓는 사람을 볼 때였다. 오늘은 "담담해서 더 슬프게 느껴진 그런 말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최근 인터넷에 올라온 글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서른 살에 자신의 집을 샀다는 제목의 글이었다. 처음엔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그저 그런 자랑 글이겠거니 하며 무심히 글을 읽었다. 물론 내가 예상했던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는 말로 시작한 글쓴이는, 할머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말했다. 그녀가 매일 아침 자신의 옷뿐만 아니라 양말까지 다려놓았다고. 또한 자신이 선생님들의 파란색 펜으로 칠해진 책으로 공부했지만 전교 3등 안에 계속 들었다는 말로, 자신이 어렸을 적 가난했을지라도 환경을 탓하기보단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 남들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이뤘음을 말해주었다.
할머니의 사랑과 자신의 노력으로, 글쓴이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기업에 입사했음을 말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글쓴이는 자신이 서른 살이라는 나이에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정말 잘됐다'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읽고 있다가, 그다음 문단을 읽는데 가슴이 아려왔다.
글쓴이는 자신의 집을 갖게 되었지만, 현재 자신의 부모님과 할머니 모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집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그것을 갖게 되었지만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글은 끝났다.
감정이란 건 참 신비롭다. 자신이 무언가를 느끼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말을 전부 상대에게 전하는 것보다 단순한 한 문장, 말 한마디가 더욱 상대의 마음을 울릴 때가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고백할 때 내 마음이 어떤지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어, 그저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만 가까스로 내뱉었던 적이. 너무나 힘들어서 무너지고 싶던 순간에 그저 옆을 묵묵히 지켜주던 이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던 순간들. 사랑하는 사람이 나로 인해 슬픔을 느끼는 것을 보며 미안한 마음에 들썩이던 어깨 끝에 손끝만을 겨우 올려놓았던 그때가.
절제된 감정표현은 상대에게 특유의 떨림과 감동을 준다. 감히 짐작조차 어려운 어렵고 고된 경험들을 유독 담담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마음이 아려온다. 살면서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난 이후부터 나는 자신의 힘듦을 과장하거나 부풀려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사람에게 있어 자신이 겪는 힘듦은, 분명 있는 그대로의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란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을법한 힘듦조차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부풀리는 사람들을 뜻한다. 부모와의 가벼운 마찰,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따금씩 하는 야근이나 회식, 친구와의 의견 차이 등 살다 보면 한 번쯤 겪는 일들마저 마치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힘든 것인 양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의 SNS 계정이나 알림 말 등을 통해 '여기 좀 보세요! 제가 이렇게나 힘들다고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안달 난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정말 힘든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사람은 정말로 힘든 순간이 오면 공감받기 위해 타인에게 연락할 에너지조차 끌어올리지 못한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 자칫 타인에게 옮겨질까 봐 두려워서일 수도 있으며, 그러한 상황에 놓인 자신의 처지가 스스로 부끄러워 말을 꺼내지 못할 때도 있다. 즉, 정말로 힘들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힘듦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슬픔을 남들에게 알리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분명한 사실 하나는 스스로의 감정을 어느 정도 선에서 절제할 줄 알아야 스스로의 삶이 평탄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사람이 당신 곁에 있다고 해보자. 작은 실수 하나에도 표정이 굳어졌다가, 한순간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지는 그런 사람. 감정 기복이 심할수록 자신뿐만 아니라,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까지 힘들어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다.
당신에게 일어나는 여러 부정적인 일들을 이유로 타인의 공감과 동정을 받으려 하지 마라. 당장 잠깐의 위안은 될지언정 그것이 당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물론 정말 힘든 순간이 닥쳤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의 따뜻한 위로는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위로나 공감은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줄 뿐, 스스로 일어나 두 다리로 걸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의 위로나 공감만을 바라게 된다.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면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들은 한가득인데, 주변 사람들의 공감만을 들으며 '나는 잘하고 있어'라는 자기 위안에 취해 눈앞에 닥친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보다 담대해져라. 당신에게 일어나는 상황들을 억지로 부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힘듦을 힘들지 않다고 부정하는 순간부터 모순은 시작된다. '괜찮아. 나는 지금 힘들지 않아'가 아닌, '힘들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또 해봐야지'라는 마음가짐이 훨씬 더 당신에게 이롭게 작용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의 오늘 하루 또한 견디기 버거운 일들로 가득 차 있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만 그럴 사람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런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꼭 '잘' 살아야만 할 필요 없다고. 그저 지금처럼 살아가는 게 어찌 보면 '잘 사는 것' 아니겠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