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어서, 솔직하지 못할 때도 있다

by Quat


그 어떤 상황이 닥치든, 최후에는 솔직함만이 남는다. 다투기 싫어서,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할 때도 있겠지만 더 이상 뒤로 한 발자국조차 물러설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슴 한편 고이 접힌 진심을 힘겹게 끌어올려 펼친 뒤 상대에게 전한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핑계들을 다 떼어놓고 나면 아주 작은 알맹이만 남지만, 그 작은 알맹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하지만 때로는 진심이 너무나 커서 전하는 것조차 어려울 때가 있음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진심이어서, 오히려 솔직하지 못할 때"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주말에 '환승연애2'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1화부터 전부 챙겨 본 건 아니고 유튜브를 통해 하이라이트나 요약본 등을 찾아보았다. 이미 끝난 프로그램을 본 이유는 단순했다. 주변에서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는 얘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본 후에도 꽤 흥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누구인지는 말할 순 없지만, 전 연인과 다시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있었다. 또한 새로운 인연을 찾은 사람들도 있었다. 자신이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며 웃고, 데이트를 하는 등 나와 함께 했던 것들을 바로 앞에서 보는 기분이란 어떤 것일까. 그런 모습들까지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쿨한 것일까, 진심을 숨기는 것일까.



비록 TV 프로그램이기에 어느 정도 연출이 들어가긴 했겠지만, 실제로 만났던 연인들이 출연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알려주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것. 그것이 많은 사람들을 보다 몰입하게 만들었던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들 또한 사랑을 하고, 이별을 겪은 뒤,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지 않는가. '전 연인'이라는 점을 부각해 자극적인 요소를 집어넣긴 했지만, 한 번이라도 연애를 한 사람이라면 이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이 했던 과거의 연애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내 눈길을 끌었던 건, 무려 6년을 만나고 헤어진 한 커플이었다. 요즘엔 1년의 연애도 길다고 여겨지는데 자그마치 6년을 만났다니. 나 또한 한 번의 연애를 오래 했었기에, 다른 커플들보다 좀 더 그 커플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한쪽은 상대방이 좀 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주길 바랬고, 다른 한쪽은 상대방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길 바랬다. 보는 시선에 따라 후자에 속한 사람이 '솔직하지 못했다'라고 여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좋아하는데 그 마음을 참을 수 있을까.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것이 가능해질 때도 있다.



사람들은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엔 한 가지 모순이 숨어있다. 솔직한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모든 부분에서 솔직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바로 자신에게 좋은 것과 바람직한 것들만 훨씬 더 솔직하게 표현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대부분은 이에 대해 반문할 것이다. "나는 내 연인이 기분이 안 좋은 것도 나한테 말해주길 바라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당신이 '어디까지 받아줄 수 있는지'에 따라, 당신이 정말 솔직한 것을 좋아하는지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가 상대방의 부정적인 말이나 감정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막연하게 "연인 사이에선 숨기는 게 있으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막상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솔직하게 말했더니, "그래도 그건 아니지"라던가 "그건 네가 잘못했네"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게 부지기수인 것이다.



이 말은 꼭 연인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공감하라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내가 아끼는 사람일지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오히려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 때도 있다. 다만 그 말을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는 당신의 센스에 달려 있다. 솔직하게 말하라는 상대의 말을 믿고 자신의 마음속 깊숙이 있는 진심을 힘겹게 꺼내자마자, 그것을 반박당한다면 어느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만약 당신이 그 입장이라면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진심이라서' 더 말을 꺼내기 힘들 때가 있다. 이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무너질까 봐, 상대에게 여지를 줄까 봐, 또는 상처를 줄까 봐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련한 진심은 반드시 어느 한쪽에게는 상처를 주기 마련이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말이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는 것도 진심이다. 하지만 반대로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진심이다.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심이 아니었다고 어떻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상대의 진심을 내 기준으로 진심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반대로 당신의 진심 또한 타인의 기준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정말로 사랑하기에, 오히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누군가에겐 모순적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성립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어렸던 시절,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둘 다 성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실수였다면 상대는 약간의 상처만 받았겠지만, 그 대상이 나였기에 별 것 아닌 행동에도 그 사람은 서글픈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것을 그 어떤 누구보다 자신이 알고 있다면, 그럼에도 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나보다 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기에 내 진심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그 사람에게 같은 상처를 주기보단,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진심을 숨기곤 한다. 하지만 그 진심을 숨기는 행위 때문에 상대가 상처를 받기도 한다. 결국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오로지 '선택'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들의 선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들'뿐이니까. 또한 우리들의 선택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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