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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Nov 22. 2022

당연히 비를 좋아할 줄 알았지, 너도 나처럼


종종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상대방 또한 당연히 좋아할 거라 행동하는 사람들. 지금까지 내가 만난 그러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정이 많아서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에 대해 아까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베푼 만큼 타인에게 돌려받지 못했다. 또한 그들의 배려나 적극적인 태도에 대해 적지 않은 이들이 부담스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들의 행동 중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오늘은 "정이 많지만, 친해지고 싶진 않은 사람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나이를 먹어도 마냥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누군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그저 해맑게 웃고 행동하는 사람들. 이렇게 글로 그들을 묘사하면, 친해지고 싶고 내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부류의 사람을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들은, 아마 조금 다르게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상대와 알고 지낸 시간, 만났을 때의 상황,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등을 완전히 배제한 채, 그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건 꽤나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기만 할 뿐', 그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지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말과 행동을 수습해야 하는 건 나와 당신이라는 것이다.



조금 더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 만약 당신이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예전에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만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당연히 반가운 마음이 들 것이며, 지금까지 각자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것이다. 과거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깔깔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 자리가 '절대 웃어서는 안 되는 자리'라면 어떨까.






당신은 친한 친구 A로부터 A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해 듣는다. 슬픈 감정과 함께, 친구가 걱정되는 마음에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당신은 장례식장으로 향한다. 이미 너무 많이 울어 눈이 부어버린 A를 보며 당신 또한 슬픈 감정이 격해짐을 느낀다. 그때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A와 함께 아는 사이였던 친구 B가 당신을 향해 웃으며 다가오는 게 보인다.



친구 B는 예전부터 조금 독특했다. A와도 친분이 있기에 몇 번 함께 만난 적은 있었지만,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곤 했다. A가 맛집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한 가게에 갔을 때, B는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여기 진짜 맛없다"라는 말을 한 게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난다. B는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도 그랬다. 연인과 사이가 좋을 땐 도통 연락이 되질 않다가, 다투거나 헤어지면 칼같이 전화가 왔다. 자신의 감정에 너무나 솔직한 것. 그것이 B의 가장 큰 장점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B와는 멀어지게 되었고, 연락을 안 하고 산 지는 몇 년이 되었는지조차 모르겠다.



그런 B가 A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을 향해 웃으며 걸어오고 있다. B는 반가움을 얼굴에 가득 붙인 채 당신에게 다가오더니, 당신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말했다.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 당신은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며 인사를 하고는, B의 손안에 갇힌 당신의 손을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구출해낸다. 당신과 A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는 전혀 관심 없는 듯이, B는 계속해서 당신을 여기서 만나 얼마나 반가운지를 드러내기에 바쁘다. 당신은 그런 B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한다. '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내가 만들어낸 허구이다. 하지만 '친구 B'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접해본 사람들은, 주인공이 느낀 '왠지 모를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앞선 이야기에서 우리가 친구 B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상황'과 '타이밍'에 어긋나는 친구 B의 행동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보면 반가운 감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슬퍼하는 친구를 앞에 둔 채', 굳이 반가움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친구 B가 적절하게 대처했다면, 주인공 또한 친구 B를 예전보다 좋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 B는 주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감정만을 드러내기 급급했다.






상대방과의 친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스킨십을 한다거나 과한 배려를 바라는 등의 언행은 오히려 그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사람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여는 시간이 다를 뿐 아니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포인트들도 제각각이다.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는 이걸 좋아하니까, 이걸 너에게 줄게. 그럼 너도 날 좋아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어리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일 뿐이다.



나의 마음이 효과적으로 상대방에게 전달되길 원한다면,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그것을 바꿔 전달해야 한다. 외국인을 만나서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알아듣게 전달하고 싶다면,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대는 모르는 언어로만 계속해서 말을 건다면, 자신과 상대방 모두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 이어지게 될 뿐이다.



상황과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건, 어릴 때나 이해받을 수 있는 일이다. 성인이 되고, 나이를 어느 정도 먹었는데도 순수하다는 것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만을 내포하진 않는다. 나이가 있음에도 순수하다는 건 그만큼의 경험이 없다는 것이며,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흰색이 되지 말라고 해서 '검정이 되어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사람과 상황에 따라 스스로를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때에 따라 악해질 수 있다는 건, 내면에 깔린 근본적인 선이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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