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빌게이츠에게 '거지'라는 말을 했다고 해보자. 만약 빌게이츠가 그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이번엔 반대로, 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똑같은 말을 건넸다면 어떨까. 똑같은 말인데도 상대방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타인의 말로써 내 감정이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난 주말, 여러 사람들과 지정된 책 한 권을 읽은 후 토론하는 활동이 있었다. 나는 활동에서 토론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런 역할도 처음 맡는 데다가, 참석하는 인원 또한 꽤나 적어서 살짝 긴장한 상태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은 서서히 풀려갔고, 시작하기 10분 전부터는 오히려 설레는 기분마저 들었다. 지나간 과거를 떠올려보면 이런 일들을 수없이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했었고, 지금도 독서모임에서 매주 새로운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독서 토론 활동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비록 인원은 적었지만, 각자가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오히려 많아진 셈이었다. 평소 생각하기 힘든 주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발언할 시간이 충분했다. 나를 포함한 4명이서 쉴 새 없이 서로의 생각을 말하고 듣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예정된 독서토론이 끝난 후 가볍게 뒤풀이를 가지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조용한 펍으로 이동해, 시원한 하이볼을 마시며 아까 못다 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첫 독서토론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내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자 행동 또한 아까와는 사뭇 달라졌고, 그런 내 모습을 처음 본 한 분은 살짝 놀라며 '처음 뵈었을 때와는 이미지가 다르시다'라고 말하셨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 중 이미 나를 몇 번 본 지인 한 명은, 그분에게 '저분이 생각보다 실없다'라는 농담을 던졌고 나 또한 그 말에 웃으며 수긍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까지 즐겁게 먹고 마시며, 주말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게 그 말을 한 지인은 물론, 그 말을 들은 나도 '실없다'란 말을 농담이라 생각하고 웃어넘겼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나 스스로 '실없는 사람'이 아님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진지한 대화를 훨씬 좋아하는 편임에도,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진 않는다. 정말로 내가 실없는 사람이었다면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농담을 결코 좋게 받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물론 그러한 발언 자체가 무례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 당시에 나라는 사람이 지금에 비해 많은 것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여기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숙도 포함되어 있다.
부자에게 '가난하다'라는 말은 농담일 뿐이다. 하지만 정말로 가난한 사람에게 '가난하다'란 말은 결코 농담이 될 수 없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부족한 면을 알고 있다. 그래서 누구나 그것을 숨기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가지게 된다. 과장되게 행동하거나, 관련된 대화가 이어지면 주제를 돌려버리거나, 오히려 그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등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숨기려 한들, 방심한 상태에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누군가 쿡 찌르면 순간적인 감정의 동요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실 극복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을 '가지면' 된다. 외모에 자신감이 없다면 꾸준한 운동 또는 성형 등의 방법을 통해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얼굴과 몸매를 가지는 것. 돈이 부족하다면 소비습관 개선, 재테크, 다양한 파이프라인 구축을 통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수준까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그것을 이루기 전까진 여전히 자신의 약한 부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례한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현명하게 지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인정'과 '드러내기'이다.
'인정'이란 스스로 못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자신부터 인정하는 모습을 말한다. 자기 자신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나는 쿨해'라고 말하며 작은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 '난 솔직한 사람이지'라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와의 괴리감이 크면 클수록 곁에 머무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드러내기'엔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정'을 했다면, 이제는 인정한 자기 자신의 못난 부분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아무 데서나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회피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절대로 당신을 잘 알 수 없다. 그저 당신이 무언가에 어떻게 말하고 반응하는지 보며,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의 판단을 내릴 뿐이다.
당신이 스스로의 못난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을 용기 있게 드러냈다고 해보자. 세상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당신이 자신의 입으로 그것을 보여줬다고 해서, '저 사람이 먼저 말했으니 나도 언급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과, 타인이 깎아내리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위해, '감정을 드러내는' 연습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분명히 맞는 말이지만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당신이 얼마나 기분 나빠하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말을 해줘야 한다. 상대의 언행으로 인해 지금 당신이 어떤 감정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것은 당신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 지을 수 있게 만든다. 상대가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정말로 좋은 사람이라면, 당신의 말을 들은 후 자신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는지와 관계없이 일단 사과를 할 것이다.
상대가 자신을 아예 잘못 판단하고 있다면, 흘려들으면 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라기보단, 상대의 무관심과 미성숙과 관련된 것이니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때로는 맞는 말임에도 화가 날 때가 있다. 속된 말로 '관통당했다'는 의미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누구보다 솔직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알고 있다'와는 다르다.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음에도, '그게 나니까'라는 합리화를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타인과 자신 모두에게 엄격하고 공평한 잣대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솔직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비판에 쓸데없이 날 서지도, 마냥 흘려버리지도 말라. 상대는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왜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장고(長考) 후에 이유 없는 비난이었다고 판단되면 흘려버리되,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해 보라. 당신의 분노가 상대의 오해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치부를 들켜 부끄러운 것 때문인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 2가지만 제대로 구분할 줄 알아도, 당신은 나이와 상관없이 충분히 어른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