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이걸 싫어하면 어쩌지' '남들이 내 이런 모습을 싫어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음에도 타인이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을까 봐 말하지 않고 망설이거나, 싫어하면서도 상대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맞춰주는 것.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어디까지 해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은 "나답게 행동하기 전 생각해 보면 좋은 것들"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최근 배우 이청아 님이 등장한 영상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영상 속에 등장한 그녀는 과거 다른 작품에서 봤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그중 가장 달랐던 건 바로 '목소리'였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녀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낮은 톤으로 그녀는 말했다. 편하게 "나"라는 발음을 할 때의 목소리가, 자신의 진짜 목소리라고 말이다. 타고나면서부터 자연스러운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는 말이 '나'라는 게 새삼 신기하지 않냐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배우라는 직업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로 살아왔던 그녀.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게 그녀뿐이겠는가. 우리는 가족, 연인, 회사 등 다양한 관계 속에 잘 스며들고 적응하기 위해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다. 편한 사람 앞에선 이렇게, 조금 불편한 사람 앞에서는 저렇게. 각자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른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대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보인다.
상황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상황에 따라 어울리게 행동하는 것과, 상황에 맞춰 자신을 바꾸는 건 다르지 않냐고 말이다.연기하는 모습조차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면, 100개의 상황에 처한 우리의 진짜 모습은 정말 100개인 걸까.
슬프지 않은데도 억지로 슬픈 척을 하는 것. 재미있지 않은데 억지로 미소를 띠며 상대의 농담에 맞장구쳐는 것. 공감할 수 없는 부분임에도 상대의 호감을 얻고자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것. 과연 이 모든 행동들이 진정한 '나'의 다양한 모습이라면, '솔직한 나'와 '솔직하지 못한 나' 모두 나라는 말이 된다. 마치 옛 고사성어 '모순'이 생각나는 듯하다.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세상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인권이 존중되어야 마땅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까지 존중해주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존중해 주는 사람은 마치 '깨어 있는 사람'이며, 그렇지 못한 행동을 하면 '고지식하고 막힌 사고를 가진 사람'처럼 취급받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만연히 퍼져 있는 듯하다.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지 못하면 마치 내가 '이상한 꼰대'처럼 보일까 봐,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이나 하며 상대의 견해에 맞장구를 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그렇게 만들어진 자아로 관계를 이어가던 중 결국 한계에 부딪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때, 상대가 "너도 그때 공감했잖아"라고 화를 낸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 걸까.
공감하지 못했다고 하면 자신의 잘못이 돼버리고, 공감했다고 하면 지금의 모습이 거짓이 돼버리게 된다. 함께 존재할 수 없는 두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며 상대처럼 자신도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기껏 공감해 줬더니 저런 식으로 나오네. 나 참 어이가 없어서."라는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겪은 일을 가족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면 반응은 뻔하다. "걔 참 이상하네. 네가 그동안 맞춰준 게 대단하다, 대단해." 그렇게 서로가 상대의 탓을 하며 또 하나의 '억지 관계'가 끊어지게 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위에서 언급한 '억지 공감을 해줬던 사람'과 '억지 공감을 받았던 사람', 둘 중 하나였거나 둘 모두의 입장이 되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두 입장 모두를 경험해 보면서 이제야 느끼는 건, "시작되는 관계에서의 솔직함"은 서로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타인이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공감을 해주든, 존중을 하든 그것과는 별개로 그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매우 독특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도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극소수지만 존재할 확률이 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서로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과 같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우리는 처음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과 대화를 하며 천천히 상대에 대해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취향이나 생각을 가진 사람과 좀 더 빨리 친해지고 가까워진다. 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 중에선 꼭 비슷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자신과 다른 면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끌리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 자신 또는 상대가 원래 본인에게 익숙한 것과는 다르게 행동한다면 어떨까. 처음 보는 사람이기에 당연히 "저 사람은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해, 점점 마음을 열고 편하게 대하던 중 상대가 갑작스레 "사실 난 너와는 달라"라고 자신에게 말했다고 상상해 보라. 친함의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상대가 느낄 감정은 비슷할 것이다. 당혹, 분노, 수치, 부끄러움 등등 온갖 감정들과 함께 지금까지 보낸 시간들이 모두 거짓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한다.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처음부터 좀 더 솔직하게 대했다면 서로가 상처받지 않을 수 있었는데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누구를 대하든 100%의 솔직함으로 대하라는 건 아니다. 나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는 부분, 완전히 솔직하진 않은 부분들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진짜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이다. 즉, 시간이 지나 내 언행이 솔직하지 않은 것임을 상대가 알아챘을 때 그것이 관계에서 미칠 영향을 미리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놀이기구를 전혀 타지 못하는 사람이, 상대가 놀이기구를 무척 좋아한다는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은 놀이공원을 갔다고 해보자. 몇 달이 지나 상대가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미안함을 느끼겠는가! 자신은 그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지만, 상대의 입장에선 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억지로 놀이기구를 탔다는 것'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드러내기보단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사람들은 '내가 좀 힘들어도 상대방이 좋아하면 괜찮아'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힘들게 했는데도 상대방이 좋아하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도 자비롭게 웃으며 "나는 괜찮아"라고 매번 그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자신을 깎아가면서까지 상대에게만 맞춰주는 것이 배려라고 한다면, 그것을 알면서도 받아야 하는 사람은 과연 그러한 행동을 배려라고 느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아마도 상대에게 그것은 배려가 아닌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가만히 말해보라. "사실 난 그걸 좋아하진 않아" 이번엔 다르게 말해보라. "사실 난 그걸 좋아해" 뭐가 문제인가?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면 상대도 꼭 좋아해야 하는 법이 있는가? 반대로 당신이 그걸 싫어한다고 해서 왜 상대방 또한 그것을 싫어해야만 것인가?
한 그루의 나무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을 관리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수십 그루의 나무를 심어 두고 모든 나무의 가지를 관리한다면 어떨까. 아마 전자보다 훨씬 더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하며, 그렇게 관리를 해도 신경 쓰지 못하는 나무들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병들고 시들시들해진 나무들에 좀 더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멀쩡한 나무들도 하나둘씩 말라가고, 시간이 지나면 모든 나무들이 서서히 시들기 시작할 것이다.
대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질지언정 '진정한 나'는 오로지 한 그루의 나무일뿐이다. 매번 달라지는 다양한 모습을 전부 '나'라고 인식한다면, 전혀 양립할 수 없는 '나'라는 사람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A에게 나는 "초밥을 싫어하는 사람"인데 B에겐 "초밥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되었든, 어떤 자리에서든 나는 그저 나일뿐이다. 조금은 유연해져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달라지는 건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위험할 수 있다. 가만히 '나'라고 말해보라. 그리고 그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든, 그것이 진정한 당신의 목소리라는 걸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