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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Feb 24. 2023

멀어졌다가, 또다시 가까워졌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상대의 마음이 나와 같을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때로는 전보다 멀어지기도 하며, 그다지 친하지 않다고 여긴 사람과도 어떤 계기로 인해 전보다 훨씬 친해지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의 '가까워짐'과 '멀어짐'은 누구와도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우리는 이것을 이용해 상대와 자신과의 관계를 마음대로 정의하기도 한다. 오늘은 "가깝고도 먼 인간관계"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유독 잘 맞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편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들만으로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 반면에 아무리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좋은 곳에 가더라도 이상하리만큼 흥이 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결'. 성향이나 관심사가 비슷한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야말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멀어지게 될 때도 있다. 학창 시절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음에도,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났을 때 느껴지는 그 어색함과 불편함. 과거에 있었던 추억들을 공유하며 어색함을 풀어보려고 해도 그것도 잠시일 뿐,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다음에 만나면 밥 한 번 먹자'는 말을 건넨 채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에서 한 가지 착각을 하곤 한다. 그 착각이란 바로 "나의 기준에서의 내 사람과, 상대의 기준에서의 내 사람이 동일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즉, 내가 누군가를 아끼고 좋아한다는 이유로 상대방 또한 나를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생각해주지 않을까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각자가 생각하는 친함이나 배려의 기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친하지 않으면 가벼운 연락조차 하지 않지만, 또 다른 사람은 약속을 잡고 오랜 시간 동안 수다를 떨 수 있어도 "사실 난 그 사람과 그렇게 친한 편은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친함과 배려의 기준이 다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본질이 사람마다 상이하기 때문이라는 게 현재의 결론이다.



대화가 물 흐르듯 잘 통하고, 함께 있을 때 즐겁다고 느끼는 사람들 몇몇만을 두는 사람이 있다. 좁지만 깊은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한다. 반대로 인간관계를 '인맥'이라 여기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다양한 직업, 분야에 걸쳐 많은 사람들과 교류를 맺으며 살아간다. 어찌 보면 피상적일 수도 있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똑같은 사람과 관계를 맺더라도, 자신이 인간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모습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이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매우 신중하게 대한다. 자신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알아가려 한다. 그러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헌신적이고 섬세한 배려를 아낌없이 상대에게 쏟는다.



이와는 달리 넓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이들은, 처음 보는 사람도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들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태도에 낯을 가리는 사람들도 좀 더 편하게 말을 꺼낼 수 있게 된다. 사교적일 뿐 아니라 다방면에 걸친 그들의 폭넓은 지식과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이 부류에 속한 사람들은 오히려 '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경계가 더욱 확실한 편이다. 폭이 넓을 뿐, 그 안에 속한 모두가 '내 사람'은 아니며, 아끼는 사람에게는 애정과 관심을 훨씬 많이 쏟는다.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편이다. 자신과는 반대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렇게 해보라고 하면 좀처럼 쉽게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줄곧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지도 않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은 존재하지만, 어떤 사건을 통해 전과는 다르게 사람을 알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은 '좁고 깊은' 인간관계가 편하다고 해보자. 그런데 A는 얼마 전 불의의 사고를 당했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 혼자서 힘겹게 뒷수습을 해야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A는 아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전과는 달리,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처음엔 자신과 잘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과도 친해질 수 있었고, 조금씩 예전과는 다른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A의 변화는 긍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A의 달라진 모습을 보며,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것은 A를 전에 알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A라는 사람의 좁고 깊은 인간관계 속에 이미 들어와 있었을 것이며, A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들을 다르게 대한다는 것 또한 이미 체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A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들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며, A의 변화된 모습을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함을 느낄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을까.


 




꼭 어떤 쪽이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누군가와 전보다는 좀 더 멀어진 느낌을 받게 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사람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존중해 주더라도, 과거에 자신이 좋아하던 그 사람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A가 당신일 수도 있다. 반대로 A를 전부터 알던 사람들의 기분을 당신이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잘못한 건 없지만, 상황이나 감정의 변화로 인해 기존에 알던 사람들과 조금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즉 '누군가와 멀어졌다'는 기분을 느꼈다고 해서, 둘 중 하나가 서로에게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럴 땐 꼭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도움 될지도 모른다. 어떠한 계기를 통해 누군가가 전과는 달라졌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원래대로 돌아올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예전처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함께 있어도 즐겁지가 않다'는 이유로 관계를 끊는 것보다는 상대와 나, 모두에게 시간을 두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 순간 함께 있을 때 예전처럼 잘 맞다는 기분을 느낄 수도 있다.






누군가와 가까워졌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까지나 유지될 것이라 판단하지 말라. 반대로 누군가와 멀어졌다고 해서 이미 끝이 보인다며 아쉬워하지 말라. 어제와 정반대의 오늘을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상대가 변한 것처럼, 당신 또한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한쪽이 변해서 멀어졌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 또다시 가까워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멀어지는 것이 두려워 섣불리 관계를 끊는다면, 언젠가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은 타이밍이다. 떠날 사람은 아무리 붙잡아도 떠나기 마련이며,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게 되어 있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 어떤 관계든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지만, 노력만으로 모든 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전과는 조금 달라졌어도 서로의 곁에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것. 다시 돌아오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반겨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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