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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r 03. 2023

'한계의 초월'을 한번이라도 경험해보는 것


어떤 일을 하기 전, 우리는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과연 내가 그걸 잘할 수 있을까?' 헬스장을 등록해 놓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가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시간이 흘러 그 사람이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또다시 헬스장에 등록하려 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지난번에도 돈만 내고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거 아냐..?'라는 걱정이 자연스럽게 들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고 싶었던 걸 하기도 전에 포기했던 기억이, 당신 또한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평생 하지 못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은 "자기 자신과 주변의 걱정에 지나치게 휘둘릴 필요가 없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지난 한 달은 내게 있어 설렘과 동시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심지어 이런 시간을 보냈던 근본적인 원인은 타인의 강요와 같은 부당함 때문이 아닌, 나 스스로의 선택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식단'과 '새벽 조깅'이었다.



사실 처음 이 2가지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한 번 해보고 싶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먹는 것, 그중에서도 간식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과자나 초콜릿 같은 군것질거리를 약간이라도 매일 입에 달고 사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운동을 아예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섭취하는 칼로리에 비해 움직이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 퇴근 후에 최소 2시간 이상은 앉아서 글을 쓰다 보니, '당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전보다 간식을 사 먹는 날도 잦아졌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거나 건강상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지만 '조절할 필요성은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매 끼니마다 먹을 곤약볶음밥을 주문했다. '식단을 할 거면 운동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조깅을 한 뒤 출근을 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일상이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식단과 새벽 조깅을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그들 대부분은 놀라는 동시에, 걱정하는 반응이었다. 사실 그들이 하는 걱정이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작년 9월부터 2월까지 일이 바빠 주 6일 출근을 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누적된 피로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에 대한 내 대답은 "뭐, 너무 힘들면 그만하면 되죠"였다. 솔직한 심정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갑작스레 건강이 나빠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은 하되, 너무 못하겠다 싶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작정이었다. 그래도 호기롭게 말을 뱉었으니 못해도 일주일은 해보자라는 마음도 있었다.



식단과 새벽 조깅을 시작하고 난 후 일주일은 의외로 버틸만했다. 오히려 새롭게 느낀 것들이 더욱 많았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6시에 밖으로 나갔을 때, 나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 수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 칼로리가 낮은 식사를 하면서 느끼는 배고픔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불필요한 음식 섭취를 해왔는지에 대해. 달라진 일상의 첫 주는 무난하게 지나갔다.






문제는 2주째부터였다. 똑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그것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었다. 달콤한 음식들이 자꾸만 생각났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때 마주한 편의점 앞에 진열된 간식들에서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이대로 가다간 한순간에 무너질 것 같아, 검색을 통해 저칼로리 간식들을 사놓고 그것을 대신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새벽 조깅 또한 마찬가지였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얼굴을 때리는 공기는 너무나 차가웠다. 심지어 제대로 된 러닝화가 없이 달리다 보니, 조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땐 무릎과 발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어, 바로 트레이닝복과 러닝화도 구매했다. 그때부터 좀 더 편하게 달릴 순 있었지만 여전히 배고픔과 간식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이때가 가장 유혹에 많이 시달렸던 시간이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니 평소보다 날카로워졌고, 사소한 것에도 짜증이 나는 듯했다. '나는 겨우 이 정도밖에 못 참는 건가'라며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마저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러한 나 자신을 향한 분노가, 오히려 식단과 운동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화장실을 자주 갈지언정 배고플 때마다 물을 마셨고, 회사에 집에 있는 간식을 가져다 놓고 조금씩 나눠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서 간식이 당길 때면, 마트에서 산 과일을 먹고 나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가장 힘들었던 2주가 지나갔다.






3주가 지나고 난 후부턴 간식을 참는 것에 훨씬 익숙해졌다. 이제는 마트나 편의점에 들러 간식을 봐도 크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을 넘어서자, 모든 게 한결 편안해지고 수월해졌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먼저 떠졌고, 처음 달릴 때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안정감 있게 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해본 식단과 새벽 조깅은 꽤 성공적인 결과로 남게 되었다.



3월이 된 지금도 여전히 식단 조절을 하고 있다. 물론 2월처럼 철저하게 지키진 않지만, 하루에 최소 2끼는 저칼로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다. 새벽 조깅 또한 최근엔 하지 못한 날이 있었지만, 날씨가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기에 내일부터 다시 뛰어보려 한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었을까. 2주 차에 시달린 갖은 유혹에 넘어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다면, 오랜만에 먹은 일반 음식에서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가장 뿌듯한 건 이제 한 달을 견뎌봤으니 다음엔 이런 일상을 두 달 넘게 유지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벽을 마주한다. 어떨 때는 그 벽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좌절할 때도 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시련에 맞서 싸워 극복하고 이길 수 있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심지가 굳고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때로는 심하게 무너지기도 하고, 펑펑 울기도 하며, 심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과거와 비슷한 힘든 상황에 또다시 맞닥뜨렸을 때, 우리는 그것과 맞서기보다는 피하거나 멀리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가능할 때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도저히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기도 한다.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할 수밖에 없다면, 최대한 그것을 미루기보단 빨리 부딪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게 개인적인 입장이다. 그 대신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엔 당시에 해보지 못한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해 보는 것이다. 설사 과거와 마찬가지로 실패하거나 좌절할지라도,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은 당신 안에 그대로 남는다. 누적된 경험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신을 전보다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러한 크고 작은 경험들이 계속해서 쌓이다 보면, 과거에 당신이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들을 의외로 가뿐히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뛸 수 없다. 하지만 일어서서 한 걸음이라도 걸어본 사람은, 그다음 발걸음도 옮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한 발자국씩 걷다 보면 조금씩 걷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리고 그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순간, 당신은 문득 한 가지를 깨닫는다. 당신이 지금 '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생은 모든 것이 마인드 차이라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할 수 없다고 믿으면 할 수 없는 이유를 찾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도록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타인의 말보단 그 사람의 행동을 믿고, 타인의 조언보다 나 자신을 믿는 이유이다. 할 수 없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런 선택을 하기 전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되물어보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하지 않게 된 이후에도 스스로에게 '포기하길 잘했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것을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써보았는지 말이다. 당신의 앞에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다는 것.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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