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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r 06. 2023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앞을 가로막곤 한다

살다 보면 갑작스러운 기회가, 당신 앞에 찾아올 때가 있다. 당신은 고민한다. 이것을 하려면 현재 당신에게 익숙한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하곤 한다. 그들 또한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기에, 진심이 담긴 걱정을 해줄 것이다. 그런데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걱정과 애정이, 정작 당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오늘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가장 큰 장애물"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의 심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화를 내실 때도, 그 순간은 무서웠지만 이내 '왜 이런 일로 화를 내시는 걸까',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쁘셨던 걸까'와 같은 주제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사실 지금이야 이렇게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엔 내가 '심리'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생각이 좀 많은 편이라는 정도만 느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수능을 치고 나서, 담임 선생님과 대학교 및 전공 선택에 대해 대화를 나눴던 시간이 있었다. 어떤 분야를 배우고 싶냐고 물어보시는 선생님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생각해 볼 시간도 없었으니까'. 단지 좋은 대학교를 가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학창 시절 동안 의무적으로 공부를 해왔는데, 수능이 끝나자마자 진로를 결정해야 한다니!



어떤 느낌인지 비유를 하자면, 나는 몇 년 동안 양 옆이 막혀 있는 하나의 길을 따라 쭉 걸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그 길의 끝에 아주 커다란 문이 있었다. 힘겹게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수십, 수백 갈래의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누군가 곁에 다가와 "시간이 없으니 10분 안에 하나의 길을 선택해서 가주세요"라고 말을 건네곤 빤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 순간,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선택지가 하나 있었다. '자율전공'. 1년 동안 다른 과의 수업들을 들어보고 나서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그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학부라고 했다. 순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1년 정도라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찾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자율전공이라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전공을 선택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선택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대학교 전공을 '자율전공'으로 선택한 것이다. 1년 동안 정말 자유롭게 대학 생활을 즐겼고,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을 신청해 닥치는 대로 들었다. 전반적인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살면서 처음으로 만끽하는 자유로움, 나와 잘 맞는 친구들과의 만남, 대학 생활의 낭만 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심리학과"였다. 좋아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 잘할 수 있는 쪽으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결정을 하고 나서 부모님께도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런데 부모님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부모님이 선택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돈이 되지 않을 것 같다'였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심리학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았고, '심리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부모님 세대에겐 생소했던 분야라는 것도 컸다.



정말로 내가 하고 싶고 간절했다면 부모님의 반대와 상관없이 원래의 결정을 고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지금처럼 가치관이 뚜렷하지도 않았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공부를 해서 성공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결국 원래의 선택을 뒤집고,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그 이후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몇 번이나 있었다.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기 전 부모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부모님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그것을 왜 하면 안 되는지'를 말씀하셨다. 물론 모든 결정을 부모님에게 말한 것도 아니며, 부모님 또한 내 결정에 매번 반대하신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여러 번 반복되자, 어느 시점부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인생인데 왜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해야만 하는 거지?'



그때부터 조금씩 부모님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반대를 하시더라도, 그것이 내 입장에서 '타당한지를' 깊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이유가 내 기준에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원래 생각했던 대로 행동했다. 이로 인해 다투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은 훨씬 편해졌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으며 그 결과에 대해 모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는,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에게 잘 털어놓지 않는다. 왜냐하면 말을 하더라도 결국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서이다. 똑같은 상황이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갑자기 떠나는 즉흥 여행이, 누군가에겐 설레고 즐거운 일이겠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똑같은 상황일지라도 타고난 성향과 자신이 선호하는 것에 따라 '옳다고 믿는 기준'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타인의 조언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게 오히려 좋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가족, 친한 친구, 연인.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일지라도, 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그들이 내게 건네는 걱정과 위로들이, 나 자신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만한 시간과 에너지가 자신에게 충분히 있는데도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쉬면서 좀 천천히 해"와 같은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런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할 수 있는데도, 하기 싫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를 사랑해 주고 아끼는 것''내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 이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런 생각이 확실하게 든 건, 며칠 전 유튜브에서 영상 하나를 보고 나서였다. 내가 본 영상 속엔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이자, 현재는 예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는 안정환 씨가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는 것을 꿈꾸는 20대 남자들 몇 명을 데리고,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떠난 안정환 씨는 부상을 당해 시간을 허비하며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는 한 선수를 호되게 혼내고 있었다. '자기 관리도 실력', '네가 여기서 실패하고 돌아갔을 때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려보라'. 냉정하고 차갑게 들리지만, 사실 그의 말에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방송을 떠나 매우 좋은 기회임에도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후배를 보며, 같은 축구선수로서 얼마나 안타깝고 화가 났을까.



축구를 계속할지, 멈춰야 할지 기로에 서 있는 자에게 안정환 씨는 따뜻한 공감보다 냉철한 조언을 하는 걸 선택했다. 그는 앞에 있는 후배를 보듬어주기보다, 후배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따뜻하고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을 걸 알면서도, 상대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미움받을 것을 감수하면서도 그의 앞길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준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힘들수록 가까운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상황에 따라 그런 행동이, 오히려 당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 또한 기억하라. 어떤 조언을 듣든 간에 선택과 책임은 모두 당신이 져야 할 뿐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타인의 입을 빌려 답을 찾는데 익숙해질수록, 당신이 느끼는 불안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갈 것이다.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사람이 만족할만할 답을 찾으려 하지 마라. 그것은 불가능하며, 그럴수록 당신만 힘들어질 뿐이다. 결국 어떤 상황이 되었든 간에 당신과 타인, 그중 하나는 상처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까 봐 겁나서, 당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것을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를 들어 당신의 발목을 붙잡거나 진정한 성장을 방해하는 사람들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슴 아프고 슬플지라도 그들로부터 벗어나 더욱 멀리, 더욱 높은 곳으로 향할 수 있는 그런 당신이 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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