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주 간절하게 갖고 싶다고 생각이 든 것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갖고 싶었던 것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초등학생 때 당시 유행하던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이 갖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비슷한 품질의 운동화보다 훨씬 비쌌던 신발을 부모님께선 사주지 않으셨고, "안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화가 나거나 서러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땐 부모님이 안된다고 말하신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라고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 신발이 없어도 내가 신을 신발은 있었으니까.
성인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어도, 무언가를 사는데 큰돈을 쓴 적이 없었다. 옷을 사더라도 10만 원 이하의 보세 옷을 구매했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돈만 있다면 충분했다.
지금은 예전보다 씀씀이가 커지긴 했지만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하지만, 배만 차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좀 더 강하다. 이번에 새로운 옷을 샀다거나, 최신 IT 기기를 구매했다는 얘기를 들어도 흥미가 생기진 않는다. 예를 들어 지인들과 만나 대화를 하던 중, 출시 예정인 스마트폰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몇 분만 지나도 머릿속으론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이런저런 상상을 한다.
처음엔 이런 내 성향이 마냥 좋다고만 생각했다. 쓸데없는 지출을 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있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유튜브 채널의 영상을 보고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본 유튜브 영상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내용이었다. 그중 한 사람의 고민이 독특했는데, 그 사람의 고민은 '고민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사람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무리 중에 한 명이 더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눈빛에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민이 필요해요. 하지만 저는 평소에 고민이 없다 보니, 억지로 고민할 거리를 짜내야만 해요. 스스로에게 일부러 자극을 주기 위해서 말아에요."
이 말을 들은 나머지 한 사람도 자신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고, 서로가 가진 생각이 매우 비슷하다는 걸 확인한 두 사람은 놀라워했다.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 하지만 적당한 욕심은 목표로 향하기 위한 원동력이 된다. 내가 갖고 싶은 무언가를 위해 하기 싫은 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또한 목표로 하던 무언가를 손에 넣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은 대단하다.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스스로에게 심어줄뿐만 아니라, 더 높은 곳에 위치한 무언가를 목표로 설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어떤 분야에 욕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그 분야에 대한 정보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 취미로 시작한 활동에 몰두해 준전문가 이상이 된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 생각보다 훨씬 많다.
현재 내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욕심 있다는 게 꼭 나쁘게만 볼 게 아니라는 것이 흥미롭고 새롭게 느껴진다. 이것은 글을 쓰면서 느끼는 좋은 점 중 하나다. 어떤 현상을 하나의 시선이 아니라 여러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말이다.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소유욕 때문에 하기 싫은 것을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다니. 공감할 순 없어도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건 그것이 하나의 사실임을 증명한다. 아무리 부정하려도 해봐도 멀쩡히 존재하는 사람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내가 욕심이 많은 사람들은 100%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을 보며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 그런 것이다. 벚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매년 속으로 바랄지도 모른다. '올해는 제발 벚꽃이 피지 않게 해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벚꽃은 매년 봄이 되면 피고 진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그 사람은 봄이 올 때마다 벚꽃이 핀다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쏠린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좋지 않은 영향을 불러온다. 욕심뿐만 아니라 모든 감정, 현상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보는 것, 보는 방향만이 옳다고 여기는 틀에서 벗어나 조금만 더 세상을 다양하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좋고 싫음을 판단하기 전,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