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조용한 성격이지만 할 말은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부류의 사람 곁엔 사람들이 자꾸 모인다. 딱히 그들이 친해지기 위해 애쓰거나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말이다. 이유가 뭘까?
예의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타인에게 예의 없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이 그어놓은 선을 넘을 때가 있다. 선을 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상대방이 그 부분을 싫어한다는 것을 몰랐거나, 스스로 지나치게 흥분해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의 경우엔 내 말을 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보고 아차 싶어 바로 사과를 하고 넘어가기도 한다. 상대가 처음 선을 넘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똑같은 실수를 몇 번이나 한다면 어떨까? 바로 '손절'당할 것이다.
최근 한 책에서 정신적인 고통과 육체적인 고통은 사실 별반 차이가 없다는 내용을 읽었다. 우리는 육체적인 고통에 비해 정신적인 고통은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도 몸이 다쳤을 때와 비슷한 물질이 생성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어디에서 가장 많이 받게 될까? 개인적으로 사람은 '말'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홧김에 뱉은 말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기사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살인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주 크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자존감', '자기 어필', '자신감', '당당함' 등 스스로를 꾸밈없이 드러내는 키워드로 채워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여과 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비록 자신의 말에 누군가 상처받더라도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부류의 사람들 말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반대로 타인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암묵적인 동의를 한 것과 같다. 이 세상에 자신은 남에게 상처를 받지 않고 오직 주기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가?
말은 산소와 같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너무 많아지면 오히려 독이 된다. 우리가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산소조차 평균 이상으로 증가하면, '산소중독'이 된다. 숨쉬기가 곤란해지고 시야가 흐려지는 상태로 바뀌게 된다. 말도 마찬가지다. 적당한 말은 부드러운 인간관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말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반드시 그 속에서 실수가 생겨난다. 달변가라고 해도 실수 없이 오랜 시간 동안 말을 많이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성향이지만 인간관계가 넓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 말을 가만히 들어주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때가 있다. "그건 내가 해봐서 아는데"나 "아직 네가 잘 몰라서 그런가 본데"라는 식으로 자신이 훨씬 많이 안다는 것처럼 혼자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사람들보단 훨씬 나은 행동이다.
말을 잘하기 위해선 말을 줄일 줄 알아야 한다.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잘하는 건 결코 아니다. 주변에서 말 잘한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스스로 생각해도 말을 꽤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할수록 말을 줄일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솔직함이 타인에겐 무례함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인지한다면 말을 많이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잊지 말자. 쓸데없는 말이 많아질수록, 당신의 인간관계는 점점 줄어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