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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pr 05. 2023

'회피형'이라 화를 내는 게 힘드신가요?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와 다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아마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 동료 등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된다.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지거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다툼'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어떻게 다투느냐에 따라 관계는 더욱 돈독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전보다 훨씬 멀어지거나 관계 자체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다퉈야만 할까. 오늘은 "누군가와 다툴 때 해보면 좋은 생각들"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화를 내는 건, 나쁜 게 아니다


가까운 사람과 싸우는 걸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가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상대와 다투곤 한다. 이 과정에서 유독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회피형'이라고 불리는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이 서운하다고 느끼는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거나 그것을 부정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나 또한 회피형으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한 가지는, '감정은 억누르려야 억누를 수 없다'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제때 해소하거나 드러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터지게 된다. 문제는 묵힌 감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겠지',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얘기해도 바뀌는 건 없을 텐데' 이런 이유를 들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고 참고 넘어가는 것이 습관이 되면,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자책을 하게 되거나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할 가능성이 생긴다.



시시콜콜한 이유로 자주 화를 내는 건 좋지 않지만, 화를 내야 할 땐 낼 줄 알아야 한다. 무언가를 할 줄 알면서 참는 것과, 그것을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건 분명히 다르다. 나는 화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화를 내는 방법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갖고 있어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화가 난다고 무조건 소리를 지르고 얼굴을 붉혀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나 또한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보다는, 평소보다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또박또박 전달하는 사람을 더욱 무서워한다. '현재 너로 인해 내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제대로만 전달할 줄 안다면, 비슷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전보다 자신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된다.






감정과 이성의 분리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이 화가 나 있다'는 걸 상대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나는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감정과 이성의 분리'라고 생각한다.



감정과 이성의 분리란, '내가 상대로 인해 느끼는 현재의 감정상태'와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당신의 연인이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었다고 해보자. 당신에게 있어 중요한 가치관인 '시간약속'을 어긴 연인에게, 당신은 당연히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연인이 평소 자주 늦는 편도 아니고, 급한 일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늦게 된 것을 전달했다면 당신 또한 이 부분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게 다투는 이유는, 화를 낼 때 이 2가지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상대가 서운할까 봐 미리 얘기를 해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음에도, 상대가 "그래도 서운해"라고 말한다면 듣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서운한 감정을 보듬어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매번 그럴 때마다 상대방이 자신의 서운한 감정만 내세운다면 상대 또한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반대로 상대방의 감정은 무시한 채,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만을 늘어놓는다면 어떻겠는가. 그런 말들이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고, 상대에 비해 자신이 매우 철없고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이해하지만 그래도 서운해'와 '서운하지만 그래도 이해해 볼게'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들린다. '서운한 건 알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어'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서운했다니 미안해'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서운할 땐 느끼는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하되, 그래도 상대방이 노력한 부분에 대해서 인정해 줄 줄 알아야 한다. 반대로 자신이 상대를 서운하게 만들었다면 그런 행동을 한 이유 설명도 필요하지만, 그로 인해 상대가 느꼈을 상처에 대해 공감해 주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하다. 감정적인 측면과 이성적인 측면 2가지 모두를 적절히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모든' 사람과 '좋게' 풀고자 하는 생각 버리기


당신은 저 멀리서 성난 코끼리를 보고 있다. 힘껏 코를 휘두르며 화를 내는 코끼리는 점점 당신 쪽으로 다가온다. 그때 당신이 취해야 할 행동은 뭘까? 성난 코끼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침착한 목소리로 대화를 해야 할까?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최대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다.



한때는 나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도 꾸준히 노력하면 대화를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를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이후로, 더 이상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 서로를 위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누군가와 다투는 과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은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결론이 내려지거나, 그 사람이 내게 보여준 태도가 너무나 실망스럽다면 굳이 좋게 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인간관계에서는 '용서해서는 안 될 행동'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한 다툼에 있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상적인 사람보다는 조금은 냉정하고 차갑더라도 확실하게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사람을 선호하는 편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대화를 하려고 하거나,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방법을 찾으려 할수록 당신만 힘들어질 뿐이다. 특히 가장 가까워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고통은 더욱 커지게 된다. 권위적인 부모님, 제멋대로인 형제자매, 이기적인 연인 등 이런 사람들과 얽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관계 그 자체보다, 그 대상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가족다워야' 가족이라 할 수 있고, '서로를 위할 줄 아는 연인'이 진정한 연인인 것이다. 그러니 누가 되었든 상대와 '제대로 된 관계'를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화를 제대로 내기 위해선 그만큼 화를 내본 경험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이 이성적이든 감성적이든 어떤 성향을 타고났건간에 그 반대편 성향도 의식적으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를 멈추고 단호히 돌아설 줄 아는 태도 또한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가 누군가에게 서운함을 느끼거나, 상대가 당신에게 화를 내는 건 그만큼 당신을 생각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우리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화를 내거나 서운함을 느낀다는 이유로, 상대를 구속하거나 자기 멋대로 휘두르려는 건 미성숙한 행동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계 그 자체보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모 자식, 친구, 연인 사이에서 이러한 잘못된 관계가 맺어지는 경우가 아주 흔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드러내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현재 우리의 관계가 어떤지조차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감정을 쏟아낸다면 어떨까. 사실은 그렇게까지 화낼만한 일이 아니란 걸 스스로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음에도, '이 사람은 나를 어디까지 이해해 줄 수 있을까'라는 어린 마음에 자신의 감정보다 더욱 화를 내지는 않았으면 한다. 화를 쉽게 내지 못하는 사람들 또한, 과거에 자신이 견뎌낼 수 없을 만큼의 타인의 마음과 감정을 받은 경험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화를 잘 내기 위해선 단순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뿐만이 아닌, '상대방이 온전히 품을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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