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by Quat


'그럴 수 있지.'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마법의 문장. 이 문장의 가장 핵심은 '이해하는 것'이 아닌, '이해하는 척'에 있다. 각자의 기준과 가치관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존중받아야만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타인의 생각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 오늘은 "타인의 생각에 대한 진정한 존중"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그런 순간이 있다. 도저히 이해하려야 이해하기 힘든 생각을 마주하는 순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억지로 미소를 지은 채 상대에게 이렇게 말한다. "맞아, 그럴 수도 있지." 생각해 보면 나 또한 그런 적이 꽤 많았었던 것 같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며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에 대해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그들을 존중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이유로 지금까지 해왔던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어쩌면 그들의 의견이 나와는 너무 다르기에 인정하는 척하며 관심 없이 넘겼던 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상대의 말을 들으며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대충 공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 주제를 바꾸는 게, 제대로 된 존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젠가부터 누군가의 의견에 토를 달거나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는 게, 마치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나와는 다를지라도 우리는 그 의견을 인정해 주고 그것에 대한 타당성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게, 마치 사회가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답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 풍조가 점점 더 당연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비슷할지언정,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관이 꼭 닮은 쌍둥이라도, '닮은 것'과 '똑같은 것'은 차이가 있다. 외모만이 그럴까. 한때 유행해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MBTI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성향을 16가지로 나누었지만, 똑같은 MBTI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세세한 부분에선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타고나면서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색을 가진 채 태어난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어떤 사람이든 장점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반대로 단점이 없는 완벽한 사람도 없다. 성향이란 그런 것이다. 궁극적이고 완전한 성향을 가지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함을 입증하는 완벽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스스로 느끼기에 부족한 부분은 당연히 존재하기에, 그것을 보완해 줄 성향을 가진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누가 될 진 아무도 모른다. 내가 될 수도, 당신이 될 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이에겐 정말 별로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사람으로 비친다는 것. 바로 이 점이 인간의 존재 자체가 빛날 수 있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가치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얄팍한 수를 써서 타인의 돈을 가로채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해하려 하거나,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수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는 사람들. 과연 그런 사람들도 존재 자체로 빛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태어났을 때 인간은 선과 악,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은 순수한 상태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은 매우 다양한 길을 걸어가게 된다. 어떤 사람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정도로 선한 행동을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타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러한 차이가 바로 그 사람이 성장하면서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되는지'에 달려 있으며, 그 가치관에 따라 순수했던 자신의 가치가 선 또는 악 한쪽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순수하다는 것은 어떤 쪽으로든 쉽게 물들 수 있음을 의미한다. 6살짜리 아이를 떠올려보라. 아마 이 아이는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움직일 것이다. 맛있는 쿠키를 원 없이 먹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것을 먹고 나서 양치질을 하는 건 귀찮아한다. 양치질을 미루다가 이가 썩으면 부모님에게 이끌려 치과에 간 뒤,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울음을 터뜨릴 거라는 생각까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가 '양치질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얘기하지 않으면, 커서 어른이 되더라도 이 아이는 양치질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어른스럽게' 행동하진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양치질의 중요성을 모르고 자란 아이'처럼, 나이를 먹었음에도 여전히 아이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생각만이 중요하고,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며, 어떤 일이든 자신의 잘못 따윈 없는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 과연 우리는 그러한 이들의 생각까지 존중해 주고 이해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단순하지만 명확한 진리이다. 물론 그러한 기준도 자신의 것일 테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의견까지 옳은 것처럼 연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게 있어 식사를 하고 나서 양치질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인데도, '굳이 양치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의견까지 무조건 수용하고 싶진 않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타인을 대해야 할까. 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질문과 대화'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은 뒤 그에 대한 내 의견을 말하며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화는 부드럽게 흘러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와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과 '진심으로 대화를 해보는 것' 자체가,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진심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속으로 '나는 그렇진 않은데'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마치 자신이 그릇이 넓은 사람인 척 "맞아, 충분히 그럴 수 있지"라고 공감해 주는 시늉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상대를 존중해 주는 행동이라 생각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사람과 서로의 가치관의 차이에 대한 질문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타인과 자신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준다. 상대도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던 기준이 오류가 있었음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게 되지만, 그것은 자신 또한 마찬가지다. 때로는 상대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했지만, 대화를 하다 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해 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며 전보다 한층 더 성숙한 사고가 가능해짐을 느끼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이런 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세세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런 대화 자체가 불필요한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땐 나도 "그럴 수 있지"라며 유야무야 넘어가기도 한다. 타인의 존중을 받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고 있는 사람이어야, 그다음 단계 또한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상대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막연히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을 남발하진 않았으면 한다. 단지 짧은 그 한 문장을 던지며 이해조차 되지 않는 상대를 품으려 하기보다는, 조금 복잡하고 머리가 아플지라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은 적당한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것도 불변의 진리 중 하나니까 말이다. 타인의 모든 가치관에 무조건 긍정하는 태도보다는, 다름에 의문을 품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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