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무언가를 할 때 맘처럼 잘 풀리지 않는다고 느껴지는 순간과 마주치곤 한다. 그것이 잘되길 간절히 원할 뿐만 아니라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쏟고 있음에도, 제자리만 맴돌고 있는 것 같을 때. 그럴 때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오늘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순간을 대하는 법"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퇴근 후에 글을 쓴 지도 어느덧 1년이 되었다. 2022년 7월만 하더라도 구독자가 100명이 되었음을 기뻐하는 글 한 편을 썼었는데, 이제는 800명을 넘어가고 있다. 꾸준히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성실하게 글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처럼 매일 글을 쓰진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최소한 3편 이상의 글을 써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행위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내가 가진 장점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성실함'이지만, 이 장점을 글쓰기에 녹여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글을 쓸 주제에 대한 고민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 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노트북 앞에서 1시간 이상을 앉아있다 보면 '이렇게 내가 글을 쓴다고 해서 과연 누가 읽어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하더라도 고통스럽거나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인고의 시간보다 더 힘든 건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음에도 스스로 보기에 발전이 없다고 느껴질 때'이다.
취미로 요리를 배우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처음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이 사람의 머릿속엔 행복한 상상들이 가득했다. 사람들 앞에서 멋지게 요리하는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고 감탄하며 칭찬을 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열심히 요리를 배웠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되어도 그의 실력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자신처럼 요리를 배우기 위해 찾아온 누군가를 보게 된다. 자신과는 달리 요리에 흥미도 없어 보이고 귀찮음이 가득하지만, 일단 요리를 시작하면 그는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재미없다는 표정으로 대충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달 동안 배운 자신보다 손이 더 빨랐고, 자신은 몇 번이나 묻고 나서야 겨우 이해했던 부분을 한 두 번만에 받아들이곤 했다. 자신이 정성을 다해 만든 요리보다 그 사람이 대충 만든 요리를 먹고 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 안에서 무언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 또한 그런 적이 있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할수록, 나의 부족함만 절실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들이. 내가 지금까지 그것을 하기 위해 들인 노력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드는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내가 한 것을 아무도 봐주지 않을 때 느껴지는 허탈감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것을 꼭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것이 그랬다. 일도, 취미도, 사람도 다르지 않았다. 그것을 좋아하는 마음만 놓고 보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만, 현실은 너무나 차갑고 냉혹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의로 못하는 것도 힘들지만, 그것을 할 수 있고 하고 있는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고 느낄 때야말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것이 좋다면, 계속 해보라" 사람은 '할 수 있을 때 제대로 하지 못하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후회를 하게 된다. 그때 여행을 갈걸. 그때 그 일을 해볼걸. 그때 만나자고 해볼걸. 그때 말을 할걸. 우리가 후회하는 건, 아예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더 해 볼 수 있음에도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포기했을 때'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과 보상이 따라오는 것 또한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길이 존재한다. 살다 보면 무언가를 '이건 나의 길이야'라고 믿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길이 '나의 길'이라는 건 오로지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그 길에 들어선 뒤 오랜 시간 동안 시간과 노력을 쏟았음에도,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닥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알 수 없다"이다. 걸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그 길이 자신의 길임을 알 수 있겠는가.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만나보지도 않고 그 사람이 나와 잘 맞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맞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사실은 아니다. 두렵지만 그 길을 걸어보고, 그 사람을 만나보아야 제대로 된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정말로 용기 있는 사람이란 겁을 내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한 번도 겁을 먹어본 적이 없다는 건, 그 정도의 두려움에 맞서본 적이 없다는 것과도 같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면서도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것을 하는 사람이다. '무섭지만 그것을 견딘다'는 건,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무서움을 견딜 줄 아는 사람과 하나도 무서운 게 없는 사람이 이제까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무서움을 마주했을 때, 둘 중 어떤 사람이 더욱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일단 시작했다면, 끝까지 해보라. 시도한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마냥 모든 걸 못 할 수도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 어느 정도의 신중함은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신중하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무언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신중하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없기에, 계속 후회하는 결과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풀리지 않는 순간도 순간일 뿐이다. 정말로 당신이 그것이 좋다면, 계속해보라. 그렇게 하다 보면 분명히 당신은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그것을 계속해야 할지, 이제는 멈춰야 할 지의 두 갈래 길 말이다. 그러한 순간이 당신의 앞에 닥쳤다고 느껴지면 최대한 신중하고 깊게 고민해 보라. 그 길이, 그 사람이 당신과 맞지 않았다 하더라도 너무 크게 상심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한 경험 자체가 당신이 다음 길을 걸을 때, 다음 사람을 만날 때 분명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당신이 걷는 길도, 눈앞에 있는 상상대도 아닌, 당신의 선택 그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