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말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자신 또한 그렇게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한 재능을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어디 말뿐이겠는가. 누군가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고, 되고 싶어 했던 모습이 또 다른 사람에겐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멋진 외관, 화려한 말솜씨, 부러워할만한 직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 말이다.오늘은 "마지막의 마지막이 돼서야 비로소 느끼는 단 하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사람들과 이상형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내가 먼저 언급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은 외모를 보지 않는다'는 뉘앙스로 말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물론 100% 진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말이 마냥 농담으로만 말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기 전 필히 '외면의 아름다움' 또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종 자신은 절대 이성의 외모를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들의 기준에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외모를 보지 않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선호하지 않는 것'일뿐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각자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과거 그러한 사람을 만나 깊은 상처를 받았거나, 외적인 부분보다 정서적인 교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등의 것들 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나와 유머코드가 비슷하고, 대화가 물 흐르듯 잘 이뤄지며, 전체적인 결이 잘 맞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내게 "그럼 당신은 외모를 보지 않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상대와의 내적인 교류를 더욱 중요시하고 이성에게 매력을 느낄 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을 뿐, 그것이 '외모를 보지 않는다'와 일맥상통할 순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많이 드는 생각 중 하나가 있다면, '자기 관리'가 점점 더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실제 나이에 비해 탄력 있는 피부, 탄탄하고 슬림한 몸매, 자신에게 어울리는 패션센스 등 이러한 것들을 갖춘 사람일수록 더욱 매력적으로 보인다. 더욱 중요한 건 그들이 단순히 외모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러한 생각들은 내게 더욱 큰 확신을 주고 있다.
20대와 30대를 나누는 결정적인 차이를 2가지 꼽으라면 '체력'과 '성숙함'이다. 먼저 '체력'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당연한 말이지만 20대 때는 한 끼 정도는 건너뛰거나 밤을 새더라도, 그다음 날 생활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서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하면, 오전 내내 힘이 나질 않는다. 예전엔 삼시세끼 빵만 먹어도 괜찮았다면, 이젠 밥을 먹지 않으면 다른 것들로 배를 채워도 속이 더부룩하거나 '든든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20대와 30대가 운동을 하는 건, 이유부터 다르다. 20대 때는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더욱 뽐내고 기르기 위함이 주목적이라고 한다면, 30대의 운동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범주 안에 들어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운동을 하며 자신의 일상을 일정한 루틴으로 살아가는 30대를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나 또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건강한 신체'를 뛰어넘어, 삶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 지을 수 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책임져야 할 것들이 하나둘씩 늘어감을 느낀다. 그런데 반대로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야 할 우리의 신체는 날이 갈수록 노화되어 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 '체력'은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30대인 동시에 꾸준히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책임을 다할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20대와 30대를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 그 두 번째는 바로 '성숙함'이다. 지금까지 나는 나보다 훨씬 어린데도 성숙한 사람들을 꽤나 많이 봐왔다. 그렇기에 20대라고 해서 그들 모두가 미성숙하거나 철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연상보다는 연하를 보며 더욱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살아가는 중임을 밝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삶의 경험'이다. 앞서 말한 것과는 반대로, 종종 나보다 나이가 많음에도 때로는 철이 없다고 느꼈던 사람들도 있었다. 속된 말로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도 모를' 그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올 때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배울 점이 하나도 없었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분명 그들은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결과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습득한 삶의 지혜들은 때때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성숙한 20대들도 그렇다. 아무리 그들이 동나이대 친구들에 비해 성숙하다고 할지라도, 이따금씩 불쑥 튀어나오는 언행들을 보고 있으면 속으로 적잖이 놀라곤 했다. 자신이 또래들에 비해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그러한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는 듯한 이들도 종종 보았다. 그들이 나 또는 타인에게 자신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사람인지 은근히 돌려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스스로에게 도취된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이나 쓸데없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도 없으니까.
이처럼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그것이 자신만의 기준이라 할지라도). 허세 부리는 걸 싫어한다고 하면서, 이름 모를 사람이 타는 외제차를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소박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친구의 SNS에 업로드된 미슐랭 맛집이나 해외 5성급 호텔에서 찍은 숙소 사진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다. 본능을 거부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도 없다.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본능을 인정하고 조절하는 것'과 '본능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도 그렇다. 배가 고프지만 살을 빼기 위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배고픔이라는 본능을 참는 것과, 배가 고픈데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며 자기 자신을 속이는 건 다른 것이다. 현실을 마주할 때도 마찬가지다. 비록 현재가 불행할지라도 그것을 인정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과, 불행한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행복해"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전자와 후자 모두 현재는 불행하지만 추후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그러니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당신은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자신이 꽤 별로인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여 본 적 있는가.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런 생각을 하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였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때로는 가혹하다. 그 방향이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좋은 면만을 보고, 그것만이 자신의 모든 것이라 믿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진실은 아니다. '반쪽짜리' 진실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머지 반쪽'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을 계속해서 피하고 피하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이 돼서야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진실과 마주하곤 한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인간이 가장 무너지기 쉬운 동시에, 의지해서는 안될 무언가(또는 누군가)에 자신도 모르게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말들을 누군가에게 직접 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인간은 살면서 '마주하기 싫은 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을, 적어도 한 번은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고통. 언제 그것을 느낄지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그것에 책임지는 것 또한 당신의 몫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장래의 가능성과 고통을 맞바꾸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나는 믿는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당신이라면, 지금의 고통 또한 잘 흘려보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당장 느끼는 그 고통스러움이, 언젠가 당신이 삶을 뒤돌아봤을 때 '차라리 그때 아프길 잘했어'라며 담담히 웃을 수 있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