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어떤 사람이든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누구나 이런 삶을 살고 있진 않으며, 지금 행복하다고 해서 평생 그것이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다. 누구나 원하는 것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하며 행복한 지조차 알지 못해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어느샌가부터 주변에 '행복호소인'이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늘은 "행복 또는 불행을 호소하는 사람들"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우연히 유튜브를 보다가 아주 독특한 단어 하나를 본 적이 있다. '천재호소인'. 단어의 뜻을 나름 풀이해 보았을 때, 이른바 천재처럼 보이고자 일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행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듯했다. 자신이 천재임을 타인에게 호소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천재호소인)이 정말로 자신이 천재라는 걸 사람들에게 간절히 알리려는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싸잡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꼭 천재를 호소하는 것뿐만이 아닌 '다른 것들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는 것이다.
종종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SNS를 보다 보면, 유독 자신의 행복 또는 불행한 상태를 알리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대할 때면 '행복호소인' 또는 '불행호소인'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곤 한다.
'행복호소인'들의 경우, '불행호소인'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다. 어찌 됐든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한쪽으로 치우치면 어떤 식으로든 부작용이 생긴다고 믿는다. 그리고 내가 만난 행복호소인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주말만 되면 SNS에 쉬지 않고 게시글들이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장소,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 경험과 그에 대한 짧은 감상평. 내향적인 나로서는 그들이 가진 에너지와 새로운 분야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한 번은 그 사람과 만나 조금은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얼굴을 직접 보고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나눴던 사람은, SNS에서 내가 본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사진과 함께 적힌 '꺄'라던가 '너무 즐겁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와 같은 뉘앙스의 문구들을 적어놓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더 나아가 상대는 내게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멋진 숙소에서 지인 또는 연인과 맛있는 저녁과 와인을 즐기던 그 사람보다, 느지막이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로 유튜브를 보던 내가 더 행복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내 경험상 정말로 행복한 사람들은 굳이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거나 의도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처음 이 생각을 했을 땐 왜 그런가 고민했었지만, 생각해 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이미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이었다.
빌게이츠가 자신의 SNS에 '나는 돈이 많아'라고 자랑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그가 엄청난 대부호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박지성 선수 또는 김연아 선수가 '나는 운동을 잘해'라고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들이 세계적인 스포츠스타라는데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이처럼 사람은 특정한 무언가를 충분히 갖고 있다고 스스로 인지하는 상태가 되면, 굳이 그것을 자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일상이 온전히 행복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러한 상태를 자랑하지 않는다. 이따금씩 자신에게 있어 조금은 특별했던 나날들을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그들의 자랑은 크게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서 벗어나지 않는 편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맥주 한 잔,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날의 산책, 선홍빛으로 저무는 노을. 오히려 특별한 곳에서의 경험을 자주 자랑하는 사람들일수록, 일상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았다. 자신이 찾은 걸 행복이라 믿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확신이 없었기에, 타인의 부러움을 양분 삼아 그것을 행복이라 믿기로 했던 건 아닐까.
'불행호소인'도 행복호소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에 차이가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그들이 호소하는 불행이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것들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불행호소인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이 겪는 불행을 스스로 크게 부풀린다는 것'에 있다.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불행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감정들이다. 가족, 친구, 연인, 직장생활, 경제적인 문제 등 삶을 살면서 마주칠 수밖에 없는 갈등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자신만 그런 일을 겪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 취급을 하며,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프로필 사진. 자신의 감정 상태를 돌려 말하는 듯한 프로필 안내문구.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SNS의 스토리. 감성 넘치는 사진과 함께 적혀 있는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말들. 아마 당신도 이런 사람을 한 번쯤 본 기억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정말로 힘들어서 그런 것일까? 내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그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아서"이다. 다시 말해,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매일같이 프로필 사진이 바뀌고 SNS에 자신이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과는 달리 멀쩡하게 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다.
불행호소인들 대부분이 하루를 잘 보내고 있음에도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하는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본 후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타인의 관심'. 그들에겐 이것이 부족했다.
그들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듯했다. 자신의 일상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고,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들이 바라는 건 크게 특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들에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생기더라도, 그들은 그러한 행동을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런 사람의 존재로 잠시 동안은 괜찮아지는 듯하다가도, 그들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행동하면 불행호소인들은 또다시 자신의 불행을 불특정 다수에게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불안과 걱정을 멈추게 만들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고의 시간이 지나 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들의 마음속엔 두 가지 생각이 자라나는 듯했다. '안도'와 '경계심'. 자신이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는 마음과 함께, 그 사람 또한 과거에 상처를 준 사람과 똑같진 않을까라는 경계심이 동시에 생겨나는 것이다. 고마워하면서 의심하고, 괜찮아하면서 서운해했다. 자신의 이중성을 혐오하면서도 합리화하곤 했다. 스스로 책임져야 할 원초적인 불안까지 타인을 통해 극복하려고 한 점. 그 때문에 그들은 어떤 사람을 곁에 두더라도 매번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호소인'과 '불행호소인'.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 둘의 공통점은 같다. 스스로 충족시키거나 극복해야만 하는 감정들까지 타인을 통해 충족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행복을 찾으려 한 것. 타인의 존재를 통해 안정감을 찾으려 한 것.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것조차 홀로 설 수 있고 나서야 진정으로 가능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삶 전체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다. 그렇기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감정, 시간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도 삶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곁에 있는 사람의 삶까지 휘청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인 동시에, 곁에 둘 사람을 잘 골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당신은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5성급 호텔에서 창가를 바라보며 마시는 최고급 와인 한 잔이 행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주말 아침 소파에 누워 과자를 먹으며 영화 한 편을 보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바라는 행복에 따라, 삶의 형태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 없이 맹목적으로 열심히 사는 것보다, 자신이 누리고자 하는 행복에 맞춰 사는 것이 더 현명할 수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