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고 있는 직장인들이라면, 아마 다음과 같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일은 잘하는데 성격이 개차반인 사람이랑, 정말 착하고 좋은데 일은 정말 못하는 사람. 이 두 사람 중 한 명과 일을 해야 한다면, 누구랑 일할래?" 당신은 어떠한가. 전자인가, 후자인가. 아마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요즘엔 그래도 전자, 즉 '일 잘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쪽이 좀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착한데 일을 못하면 너무 답답하다" "어차피 회사인데 일만 잘하면 장땡이지" 그런데 왜 많은 이들이 힘들게 입사한 회사를 몇 달 만에 제 발로 나오고, 그렇게 직장 상사 욕을 하고, 'XX 때문에 때려치우고 싶다'란 말을 달고 사는 것일까. 오늘은 "어느새 머릿속에 심어진 하나의 관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려 한다. "왜 일을 못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지 않나요?"라고. 현재 정말로 '일을 못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면, 잠잠하던 분노가 솟구칠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일을 못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 사람의 실수로 인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 번 더 하게 만들어 '육체적인 고통'을 유발할 수도 있고, 별 것 아닌 일을 크게 만들어서 회사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드는 등 '정신적인 고통'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크게 보면 이 2가지가 바로 '일을 못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일을 잘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은 이유는 정반대일 것이다.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회사 분위기 또한 좋아지게 될 것이다. 회사의 특성상 순탄하게 업무가 잘 풀리는 것만큼이나 즐거운 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고 다양한 감정을 가진 채, 똑같은 업무를 하더라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인간'임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앞서 말했던 질문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해 보자. '타인의 감정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일을 잘하는 사람과, '타인의 감정을 신경 쓰며' 일을 못하는 사람. 이 둘 중 당신은 어떤 쪽과 일하고 싶은가.
물론 회사에서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기에,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감정을 100% 감추기란 불가능하다. 부모님이 갑작스레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거나, 연인과의 다툼으로 인해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출근을 했을 때도 있다.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을 하려고 해도, 그런 것들은 완벽하게 숨길 수 없다.
누구나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모습들이 있다. 그것이 회사라면 더욱더 두드러지곤 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현재 자신이 평소와 다르다는 게 느껴지지만, 상대가 그것을 모른 척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아니면 이와 반대로 누구라도 현재 내가 힘들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 당신의 감정을 파악한 뒤 손을 뻗거나 뻗지 않는 사람은 누구일까. 일을 잘하지만 '타인의 감정엔 무심한 사람'과 일은 못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사람'. 아마 후자일 확률이 더욱 높을 것이다. 특히나 사람은 예상치 않은 누군가의, 예상치 않은 배려에 큰 감동을 받곤 한다. 일은 누구보다 잘하지만 타인의 감정에 무심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라.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들까지 억지로 들춰내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티를 내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힘든 티가 나는 상황에서 '그런 건 네 친구들 만났을 때나 티 내라'라는 식의 말을 내뱉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그래도 저 사람은 일은 잘하니까"라며 지속적으로 넘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요즘 많은 이들이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조금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특정한 분야에서 자신이 어떠한 한 가지를 무척 바라는 것 같이 말하면서도, 정작 그것이 충족되더라도 그다지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 좋아'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직장 상사에 대해 엄청난 험담을 퍼붓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말의 서두는 매번 같다. "아니, 그 사람이 일은 정말 잘해. 그런데..." 외형적으로 멋진 사람과 사귀고 싶다고 말해놓고서 정작 그런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한다. 그들이 하는 푸념 또한 비슷하다. "얼굴은 정말 내 스타일이야. 그런데..."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순 없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원하는 것에도 나름의 순위가 있기 마련이다. 자신이 1순위라 말했던 것을 가지면, 나머지 2, 3순위를 가지지 못해도 어느 정도 만족을 하면서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 1순위가 자신에겐 2, 3순위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욱 큰 가치를 지닐 테니까. 그런데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런 사람과 함께 일을 하면서 전보다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는 건 꽤 흥미롭다. 비단 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자신이 중요하다 말했던 것이 충족되었지만 전보다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들은 자신이 정말로 중요하게 여기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회사니까" "회사는 일하는 곳" "회사는 돈 벌러 가는 곳"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사를 이와 같이 인식하고 있다.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감정 없이 사람을 대하고, 아무 표정 없이 기계처럼 일만 하며 퇴근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을 하는 곳이니까 일만 잘하면 된다고 하지만, 정작 회사에서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떠올려보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임에도, 하루 중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게 시간만 축내는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물론 나도 회사를 마냥 즐겁게 다니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가 그 어떤 곳보다도 관계를 잘 형성하여 생활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일만 잘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이 절대 아니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무언가에 대해 아주 쉽게 말한다. "~만 잘하면 되지"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 중 대부분이 자신이 말한 '그것만' 잘한다고 만족하진 않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감성'보다는 '이성'이 더욱 필요한 것처럼 말하더니, 어느샌가 "너 T발, C야?"와 같은, 이성적인 사고를 비판하는 말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내가 실수하면 '그럴 수 있지'가 되고, 남이 한 실수엔 '왜 남한테 피해 줘?'라는 식이다. 스스로에게 지나친 감성을, 타인에겐 냉철한 이성을 들이대기보다는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연습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