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뭘 하든 똑 부러지게 해야 하고, 실수 한 번에 죄인이 되는 세상이다. 나 또한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문제는 효율성이라는 가치가 삶의 모든 면에 있어 마치 1순위로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가기로 했던 가게가 휴무라는 걸 미치 확인하지 못했을 때, 내비게이션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바람에 잘못된 길로 들었을 때, 무언갈 두고 와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할 때. 상대의 실수로 시간을 허비했거나 괜한 수고로움을 들여야 할 때,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가. 오늘은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요즘 들어 스스로 가장 많이 깨닫는 부분 중 하나는 "나도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의 모습"이다. 상대방과의 깊은 대화를 통해 나조차 몰랐던 나를 알게 될 때가 종종 있었다. 그것이 좋은 모습이든, 그렇지 않은 모습이든 말이다.
처음 이 사실을 느꼈을 땐 약간 충격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편이기도 했고, 지금처럼 내가 느낀 생각을 글로 정리해 쓰다 보니 '나는 나에 대해 꽤 많이 알고 있다'는 자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 또는 타인에 대해 100%를 알 수 없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건 '내가 인지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 사이에 꽤나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근 새롭게 알게 된 나의 또 다른 모습 중 하나는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속도'였다. 처음 보는 사람과 말을 섞는 건 어렵지 않지만 마음을 연다는 건 내게 있어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종종 상대방이 내게 친근하게 다가와 주는 것을 보며 그 마음에 감사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친절함과 비례해 상대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타인을 적어도 몇 달은 알고 지내야 상대에게 마음을 조금씩 여는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단순히 절대적인 기간뿐만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어떤 대화를 하는지, 서로를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또한 중요했다.
그러나 꼭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몇 년을 알고 지내도 여전히 어색함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누구에게도 쉽게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전자와 후자, 그 둘에겐 어떤 차이가 있었던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가 좋아하는 것들이 겹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친해지는 계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가까워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상대를 만났을 때 얼마나 즐거움을 느끼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서로의 취향이나 생각하는 바가 얼마나 비슷한지가 매우 중요해진다. 대화 주제, 평소 즐기는 취미, 타고난 성향, 유머코드 등 이런 것들이 겹치면 겹칠수록, 우리는 자신의 시간과 돈을 들여서라도 상대를 만나려고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는 태도'이다. 아무리 잘 맞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다른 부분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서로가 맞는 부분이 많을수록, 오히려 사소한 다름이 크게 느껴지기도 한다. 큰 문제없이 잘 만나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문제 자체가 없는 게 아니라, 서로가 다른 부분을 대할 때 '그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는 것'에 있다.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행동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고 나서 대화를 통해 서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풀어가는 것이다.
최근 지인과 함께 드라이브를 간 적이 있었다. 나는 길눈이 어두운 편이라 내비게이션을 보더라도 종종 길을 잘못 들 때가 있다.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 때면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답답해하거나 핀잔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에 억울한 적도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내비게이션 상으론 목적지까지 조금 더 운전을 해야 한다고 나와있었지만, 길은 마치 막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 바로 근처에 넓은 주차장이 있었기에 적당힌 곳에 차를 세워두었다. 하지만 다시 내비게이션을 확인해 보니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표시가 떠서, 다시 차를 몰고 표시된 곳으로 이동했다. 알고 보니 그곳은 통행료를 내면 길을 터주는 식이었던 터라 평소엔 막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가보니 어디선가 사람이 쓱 나오더니 안내를 해주곤 길을 터주었다.
만약 답답한 걸 싫어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아까 가서 물어봤으면 진작 들어가고도 남았겠네"라거나 "내가 더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잖아"라는 식으로 대꾸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지인 모두 '이런 일도 있다면서' 웃고 넘겼을 뿐이었다. 분명 우리가 한 행동은 비효율적이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러한 상황조차 그날 있었던 즐거웠던 해프닝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다르면 다를수록,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은 뻔하다. 자신에게 중요한 부분이란 타고난 성향이나 성장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르다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자신의 노력 여부에 따라 충분히 넓힐 수 있다.누구나 자신과 다른 면은 반드시 갖고 있기에, 정말로 누군가와 잘 지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 다름을 얼마나 인정하고 받아 들을 수 있냐에 달린 것이다.
사랑하면 그 사람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입장이다. 자기 자신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그릇의 크기가 작으면, 누구를 만나더라도 상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그릇이 작은 건 생각하지 못하고 "우린 너무 다른 점이 많아"라고 상대의 탓으로만 돌리기 일쑤인 것이다. 사실 누구를 만나든 자신의 그릇이 넘친다는 사실은 똑같은데 말이다.
길을 돌아갔음에도 나와 지인은 웃었다. 어쩌면 서로가 비슷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쉬웠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날에만 몇 번이고 그 얘기를 하며, 그때마다 똑같이 웃었다. 떠올려보면 서로가 달랐던 부분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럴 수 있지'라는 대답 후엔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다. 서로의 다름을 말하면서도 그것을 강요하진 않았다. 그저 '네가 그런 것처럼, 나도 이런 것뿐이야'라고 알려줄 뿐이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가진 그릇의 크기는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상대의 그릇이 작은 것만을 탓하진 않았는가. 만약 그랬다면 후회할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다. 변할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2가지이다. 어떤 선택을 내릴지 또한 오로지 본인에게 달려있음을 기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