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절대'라는 것이 없는 이유

by Quat


누구나 '이것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자신만의 기준이 하나쯤 있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상태, 현재 상황,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그러한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과연 우리의 삶에서 '절대'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가. 오늘은 "삶에서 절대라는 것이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설날의 마지막 날, 집에서 한가롭게 쉬던 중 스마트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보이스피싱에 주의하라는 안내문자였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이런 걸 속아'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나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는 사람 중엔 없지만, 한 다리 건너 지인들 중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누가 봐도 뻔한 사기내용과 수법들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여기에 속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들이 어리석고 멍청해서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평소에는 그런 수법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들이지만,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판단력이 흐려지다 보니 이런 속임수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유독 '절대', '다시는', '죽어도'와 같은 뉘앙스의 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본 이들은 특정한 부분에서 매우 뚜렷한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다른 면에선 부드럽고 융통성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의 타협조차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들이 어떤 경우에는 평소 자신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는 것이다. 힘든 이별을 겪고 나서 '다시는 누굴 만나지 않겠다'라고 말했던 사람이 불과 한 달 만에 연애를 하거나, '지금과 똑같은 일은 절대 안 해'라고 해놓고 퇴사를 한 뒤 다시 그 일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자신이 한 말을 지킬만큼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일까?





그런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의지는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특정한 상황이나 가치에 대해 매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일수록,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특별한 한순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가치관은 어떠한 매체나 존경하는 인물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가치관일수록, 내면 깊숙이 뿌리를 내린 후 단단히 고정된다.



어렸을 적 가정폭력을 당한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이 사람에게 있어 부모의 폭력이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로 인식될 것이다. 반 친구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겐, '누군가를 이유 없이 괴롭힌다는 것'이 아주 몹쓸 짓이라는 가치관이 형성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가치관들 중 뚜렷함이 강한 것일수록, 과거에 내가 직접 경험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그 경험이 당시 자신에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이 믿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경험을 했을 때, 그토록 변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던 자신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한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한 기억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힘든 일상을 보내던 사람에게, 따뜻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내주는 사람이 곁에 생겼다고 해보자. 한순간에 바뀌긴 힘들겠지만 그러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마음속 깊이 남은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도 한다.



당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존재한다는 건, 그것을 아물게 할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과 같다. 다시는 누군갈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사람에게 커다란 아픔을 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이 세상 어딘가엔 그 사람이 받은 상처를 보듬어줄 사람 또한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사람은 과거에 자신이 믿었던 누군가에게 배신당하거나,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사람이 그러한 신념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건, 자신을 그만큼 믿어주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삶에 '절대'라는 건 없다. 당신은 우리가 매 순간 누리는 일상들이 결코 평범하거나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우리는 절대로 평생 행복할 수도, 평생 불행할 수도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지금 당신이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무언가가, 당장 내일 이뤄질지도 모른다. 그것이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말이다.



확률이 아주 낮다는 건, 희박하긴 해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태까지 그런 상황, 그런 사람을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건 당신의 착각이다. 내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절대 그런 것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로 그렇게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넘겨짚거나 예측하려고 하지 말라. 상황이 닥치면 거기에 적절하게 대응하면 될 뿐이다. 미리 지레짐작을 하는 순간부터, 그것은 당신이 예측한 대로 흘려가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거기에 다다르기 위한 행동을 할 테니까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큰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당신이 '절대'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아픔들마저,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지금보다는 훨씬 괜찮아질 거라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