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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02. 2023

내가 '과장님 업무'를 대신하는 이유


직장과 나의 삶.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자신이 이 사이 어디쯤에 있어야 할지 한 번쯤 고민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자신의 일에 미쳐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당신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운 편인가? 오늘은 "힘들고 고달픈 일상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독립을 한 이후부터 일상엔 끊임없는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제 햇수로는 3년 차에 접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하다. 팔을 휘젓거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이제야 균형을 잡았다고 느끼면 어디선가 훅 하고 강한 바람이 불어와, 다시금 움직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기분이다.



최근에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없이 바쁜 시기가 지나가고 이제야 숨을 좀 돌리려 하는데, 회사에서 일이 터졌다. 바로 7년 이상 일을 한 과장님이 돌연 퇴사를 한 것이다. 그것도 하루아침에. 그보다 더욱 당황스러운 건 그 빈자리를 내가 메꾸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부서를 이동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건 이미 작년에 나왔던 얘기였다. 하지만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회사에 있는 그 누구도 몰랐다. 당연했다. 과장님이 퇴사하던 날만 해도 점심을 먹기 전까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언젠간 그 일을 하겠지'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긴 했지만 그게 그 날일줄이야.






억울했다. 바쁜 시기가 정해져 있는 회사다 보니, 한창 일을 하고 이제 조금 쉬어보려 하는데 돌연 또다시 일을 배워야 했으니까 말이다. 모두가 편하게 지내는데 나만 혼자 정신없이 바쁠 생각을 하니 순간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결국은 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몇 년 간 정들었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한 뒤, 주말이 지나 새로운 자리로 출근했다.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첫날부터 한 주 동안은 내가 지금 뭘 배우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머릿속에 모든 정보를 욱여넣는 기분이었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도 가다 보니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오늘로써 2주 차, 정확히 말하면 딱 7일 간 새로운 부서에서 일을 배웠다. 여전히 많은 것들이 혼란스럽고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지만, 그래도 처음 부서를 옮겼을 때보다는 훨씬 편안해졌다. 배워야 할 것들이 100이라면 많이 쳐줘봤자 8에서 9 정도를 익혔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편안해졌다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할 따름이다. 불과 2주 전만 해도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3일 정도가 지나자 내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것들이 그랬다.






돌이켜보면 이번 변화가 내겐 유난히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껏 내 삶 속에 있었던 어떤 변화보다도 갑작스러웠으며 전혀 원하지 않았던 것임에도, 전에 있었던 그 어떤 변화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물론 힘에 부친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존에 하던 것들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과거에 비해 어떤 것들이 달라졌길래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총 3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체력'이었다. 30대가 된 지금, 오히려 나는 10대와 20대 시절보다 더 건강한 몸상태를 유지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넓은 어깨와 복근이 있는 건 전혀 아니지만, 30대 초반에 삶의 목표가 생긴 이후부터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틈틈이 운동에 하루의 일정 부분을 투자해 왔다. 덕분에 원하지 않던 변화가 생겼음에도 큰 무리 없이 잘 적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곁에 머무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결코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는 않지만, 현재 내가 자주 연락하고 얼굴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정말 사랑하는 동시에,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그들을 보고 싶어 하는 만큼 그들 또한 나를 보고 싶어 하며, 밤새도록 서로의 생각을 편하게 말하며 웃고 떠들 수 있는 존재들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땐 언제든 서로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결 든든한 기분이 들곤 한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다. '평생 글을 쓰며 먹고살고 싶다'라는 목표를 30대 때 처음 세운 후부터 평범하고 지루했던 일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출퇴근에 1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글을 쓸 시간이 부족했고, 그로 인해 처음 독립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5분 거리에 집을 구하니 쉴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동시에 글을 쓸 시간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 또한 덩달아 많아졌다. 진심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생기니 힘든 일을 마주해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지금도 졸리고 피곤하지만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언젠가는 출근 걱정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 무언가를 해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유독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게 개인적인 입장이다. 어찌 됐든 해야만 한다면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게 스스로에게도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



자칫 일상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나를 지탱해 준 건, '기존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덕분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전까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1년이 넘도록 유지한 글쓰기 습관,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 꾸준한 건강 관리. 평소엔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고 해 왔던 것들이, 힘든 순간이 닥치자 흔들리지 않게 나를 단단히 잡아주고 있었다.



물론 앞으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진 알 수 없다. 앞에서 말한 3가지로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가 닥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내가 처한 상황이 힘들면 힘들수록, 지금까지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내가 기울인 시간과 노력들이 더욱 빛을 발할 거라고 말이다. 이것이 내가 퇴사한 과장님의 일을 한순간에 떠맡게 되었음에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아이러니하지만 당신의 현재 상황이 힘들수록, 기존에 누리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분명 그것은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것을 놓아버렸을 때의 고통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차라리 그 힘듦을 견디는 게 낫다는 걸 알 것이다. '잠깐 운동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어차피 인생은 혼자야' '그냥저냥 살지 뭐' 이런 사소한 생각들이 쌓이다 보면 그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거두긴 힘들다. 당신과 내가 더 많이, 자주 웃을 수 있는 순간은 '수중에 없는 100억'이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단 몇 분'이라는 걸 기억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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