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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5. 2023

결정적인 순간 전, 그 숱한 찰나의 순간들


살아온 인생을 돌이켜보면 저마다 중대한 기로에 섰던 순간들이 있다. 10년 지기 친구와의 첫 만남. 몇 년째 다니고 있는 직장에 처음 면접을 보러 왔던 날.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과 나눈 첫 한 마디의 말. 우리는 가끔 그 순간들을 되뇌며,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에 감사함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기억하는 그 순간에 영향을 준 순간들이 있었다는 걸 떠올려 본 적 있는가. 오늘은 "기억의 순간보다 앞선 순간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전 기억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져보면 다양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초등학교라고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은 유치원 때라고도 말한다. 매우 드물게 누군가는 걷지도 못했던 때의 기억을 어렴풋이 떠올리기도 했다. '최초의 기억'도 다르지만, 현재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수많은 행동들을 하게 된 '최초의 계기' 또한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억하곤 한다.



금요일 저녁, 퇴근 후 당신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와 만나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깔깔거리며 웃다가, 문득 친구가 괜스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당신에게 말한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졌지? 처음 만났을 땐 이 정도로 친하진 않았잖아?" 이윽고 당신과 친구는 '기억력 퍼즐게임'을 시작한다. 서로가 갖고 있는 기억 여기저기에 나 있는 구멍들을, 각자 머릿속에 있는 '기억 퍼즐'을 꺼내 빈 곳에 끼워 넣는다. 마치 사무실을 차린 치 몇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승소하지 못했던 변호사가, '이번에 지면 난 끝이야'라는 생각으로 재판장에서 열변을 토하는 것처럼. 처음 친해졌다고 생각한 기억을 공유하는 순간부터 이미 퍼즐을 끝까지 맞추는 건 틀려먹은 것 같지만, 세상에 그것 하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무언가에 집중하다가 5분도 지나지 않아 널브러진 채로 주저앉아 나란히 주스를 마시는 5살짜리 아이들처럼 당신과 친구는 '그게 뭐가 중요하냐'라며 또다시 맥주잔을 부딪힌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추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디 친구뿐이겠는가. 부모님, 연인, 직장 동료,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등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그들 하나하나와 수십 또는 수백 개의 추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을 '추억'이라 부를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하튼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특정한 기억을 추억이다, 추억이 아니다로 구분 짓는 게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기억하는 추억의 순간보다 더욱 앞선 순간들"이 있음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워낙 찰나인 동시에, 너무나 짧아 기억할 수도 없는 그런 순간들. 이른바 '기억 앞의 순간들'에 대해서 말이다.






내가 처음 이것에 대해 인지한 것은, 몇 년 전 상담 쪽 일을 했을 때였다. 상담이라고 하니까 거창해 보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상담카페'에서 2년이 넘게 상담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현재 유행하는 MBTI처럼 성격 유형 검사지가 있었고, 방문한 사람들이 그것을 작성해 내게 전달하면 검사지를 토대로 상대방의 성격을 나름 분석해 말해주는 게 주된 업무였다.



월급이라고 해봐야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아직도 그때만큼 즐겁게 일했던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일이 행복했었다. 원래 출근 시간보다 빨리 출근하는 건 당연했고,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퇴근시간보다 늦게 집에 들어가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휴일인 날에도 종종 들러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했고 같이 식사도 했다. 그러다 손님이 오면 일을 하러 간 적도 많았다. 또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성향도 전보다 훨씬 사교적으로 변했고,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하는 게 일이다 보니 '나'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경영난으로 어쩔 수 없이 권고사직을 받긴 했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이 종종 나곤 한다.

 


일을 그만두고 난 뒤 몇 년이 흘렀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평소와 같이 식사를 하고 쉬고 있는데 문득 예전에 일했던 상담카페가 생각이 났다. '그때가 참 좋았지'라며 나른하게 쉬던 중,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거기서 일을 하게 됐더라?'



그때부터 기억을 타고 넘어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의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이미 몇 년이 지난 순간을 떠올린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마침내 내가 그 일을 하게 되었던 첫 계기를 떠올릴 수 있었다.






상담 일을 하기 몇 년 전, 나는 대학교 전공을 살려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대부분의 사람은 아는 곳이지만, 그 당시에도 연봉이라던가 여러 복지들이 꽤 괜찮은 곳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단점들이 있었다. 일하는 곳이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것, 현장 업무가 많아 사람들과의 마찰이 잦았다는 것, 직장 상사와 단둘이 기숙사에 살았다는 것, 그 상사가 술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 이런 여러 가지 이유들로 인해,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단 6개월 만에 제 발로 나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부모님의 기대도 컸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 성격과 잘 맞을 것 같았다. 암기에도 꽤나 자신 있는 편이었기에 열심히 하면 1~2년 안에는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 인생 가장 크나큰 착각이었다. 그렇게 쏜살같이 1년이 흘러갔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자격지심으로 인해 자신감과 자존심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20대 후반 남자 하나가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몇 번이나 시험 접수를 하고, 몇 번이나 좌절했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부푼 가슴을 안고 시험을 치른 뒤,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험장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오늘도 떨어졌다' 수없이 받아들인 결과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짜증이 났다. 나만 빼고 세상은 잘만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화가 나고 울분이 치솟았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더욱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어디에든 보여주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구직 관련 어플을 터치했다. 수많은 기업에서 올린 구직 공고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내 자리는 없었다. 경력직, 관련 전공을 제외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단순 노동직들뿐이었다. 스크롤을 내리고 페이지를 넘길수록, 한숨은 더욱 늘어났다. 그러던 중 무언가 내 눈에 들어왔다. "상담직 구함, 전공 관련 없음" 별생각 없이 공고를 터치했다. 심리학 전공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 그것 하나만 눈에 들어왔다. 기존에 등록한 이력서를 조금 고친 뒤에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연락이 왔다. 면접을 오라고 했다. 별생각 없이 그곳으로 찾아갔다. 들어가는 길목은 좁았지만 끝까지 들어가 보니 작은 대나무숲과 함께 작은 정원이 나름 예쁘게 꾸며진 곳이었다. 심지어 2층이었다. 나 말고도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있었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밝은 분위기, 그보다 더 밝게 웃고 있는 사람들. 그곳과 내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면접을 본 다음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어제 면접을 본 곳이라고 말하며,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겠냐고 내게 물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조금 있다가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하고 나서 전화를 끊었다. 다음 시험날짜가 적힌 종이와 수북이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정적이 흐른 뒤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다음날 나는 면접을 본 그곳으로 출근했고, 그날 이후 모든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마 당신도 과거의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현재의 나와 비슷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결국 우리는 매일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그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엔 당신도 동의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과거에 자신이 내린 선택들 중, 굵직한 것들 위주로만 기억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굵직한 선택들을 하기 전, 그보다 작은 선택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그 작은 선택들 전에도 그보다 더 자그마한 선택들이 있었음을 우리는 떠올려야 한다. 아주 작은 것들이 모여 그보다 큰 것을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 보다 더 큰 것이 되며 그러한 과정의 끝에 '나 자신'이 만들어진다는 것.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지극히 당연하기에 많은 이들이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



현재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극적인 변화를 가장 먼저 바라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운동을 하지만, 야식은 포기하지 않는다. 부지런히 살겠다고 12시까지 인터넷 강의를 듣고 난 후, 바로 자기엔 아쉽다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잠에 든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에 늦잠을 잔 뒤 '어제 너무 열심히 했다'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곤함을 자랑처럼 말한다.



그들의 행동력은 분명 대단하고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작은 것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는 사람이, 그보다 크고 중요한 것들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당신이 살고 있는 집을 위해 들어갔던 돈은, 회사를 열심히 다니기 그 이전에 '피곤함을 이겨내고 아침에 씻고 출근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곁에 머무는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에게 잘했다는 것 이전에 '그들 각자와 만났던 곳으로 가기 위해 들인 여유분의 시간과 에너지'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큰 것에만 집중하며 작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으면, 결국 원하던 큰 것들을 놓치게 된다. 자신이 놓친 것들을 아쉬워하며 더욱 큰 것에 집착하고 전보다 더 작은 것들을 안중에도 두지 않으면, 이러한 굴레를 벗어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작은 것에도 고마워할 줄 알아야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하루 중 1시간이라도 원하는 것을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앞에 닥친 결정적인 순간들 전엔 무수히 작은 순간들이 있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오늘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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