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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18. 2023

재밌지 않으면 왜 해?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을 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어떤 이는 경제적인 부를 위해, 또 다른 이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계속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처음 그것을 시작했던 건 대부분 같을 것이다. 오늘은 "재밌지 않으면 왜 하는 것인가"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최근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보았다. 바로 여행유튜버 '곽튜브'와 연예인 '노홍철'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업인 '벤앤제리스' 본사에 초청받아 방문한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는 그들이 '벤앤제리스'의 공장에 방문해 어떻게 아이스크림이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살피거나, 직접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는 등이 담겨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들이 '벤앤제리스'의 창립자인 '벤'과 '제리'를 만나 대화하는 순간이었다. 마침 차에서 내려 본사로 향하던 도중, 그들은 출근 중인 '벤'과 '제리'를 만나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한눈에 보기에도 내 할아버지 뻘이 되어 보일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이는 두 사람이었지만,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엔 웬만한 젊은 사람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게 느껴졌다.



그 나이에도 저런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다는 게 마냥 신기했던 내 의문은, 노홍철의 질문 하나로 곧 풀리게 되었다. 바로 '벤앤제리스'의 창립이념 중 하나가 "재밌지 않으면 왜 해?"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자신 또한 무언가를 시작하는 기준이 그들과 비슷하다고 말하며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영상엔 그들의 대화가 모두 담겨 있진 않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몇 마디의 말과 행동만으로도, 사업을 한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들이 '재미있게 하고 있음'을 증명하기엔 충분했다.






물론 단 몇 분간의 영상으로 그것을 판단한다는 게 섣부를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주목했던 건 그들이 보여준 자연스러운 제스처에서, 그러한 에너지가 여전히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처음과 같을 순 없겠지만 그들이 아이스크림 판매를 처음 시작할 때 마음먹었던 가치관을, 할아버지가 된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밌지 않으면 왜 하는가.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들과 스트레스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라는 걸 당신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노력한 부분에 대해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을 때. 누군가를 사랑한 만큼 그 사랑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자신이 타인을 대하는 마음과 타인이 당신을 대하는 마음이 같지 않다고 느낄 때. 우리는 이러한 등가교환이 현실에서 절대 동등하게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느끼는 순간 머릿속에서 '그럴 수 있지'라는 이해와 동시에, 가슴 한편에서 솟구치는 부정적인 감정들까지 쉽사리 억누를 수 없음을 깨닫곤 한다.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시작할 때 단순히 '재미'에만 치중해 시작하진 않는다. 지극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나, 다른 대안이 딱히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해야만 하는 경우들도 종종 생긴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가 아닌 이상 우리가 새롭게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그것에 대한 흥미"가 가장 주된 이유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시작하더라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왜 그런 것일까? 그것을 몇 번 하다 보면 자연스레 그 행위 또는 대상에게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시간은 다르지만, 결국 '익숙해진다'는 결과에 다다르는 건 같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몇 년 동안 한 가지를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에 흥미를 갖고 처음과 비슷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어떤 것에도 만족하지 못한 채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두 사람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종종 자신이 무엇을 하든 매우 빠르게 적응한다는 걸 자랑하듯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분명 그들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능력들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빠르게 녹아들지만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기에 그들은 금방 새로운 것에 질려버리곤 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완벽히 알아간다는 것이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만물이 별개가 아니라 결국엔 이어져 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배운다고 생각해 보라. 시간이 지나면 그 프로그램을 다루는 방법엔 익숙해지겠지만, 그 사실이 당신이 '컴퓨터를 이해했다'와 동일한 의미가 되진 않는다. 컴퓨터에 설치된 모든 프로그램을 이해하더라도 그것을 능숙히 다루는 건 다른 문제다. 만약 모든 프로그램을 능숙히 다룰 수 있게 되더라도 '컴퓨터'라는 물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니터와 키보드에 어떤 부품들이 들어가는지 전부 아는 건 아닐 것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흥미를 느껴 그 사람과 친하게 지내더라도,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완벽히 파악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은 단지 일부분이며,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도 자신조차 미처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무언가 또는 특정한 누군가에 대해 "난 다 알지"라며 자랑하듯 말하는 사람을 보면, 되려 '저 사람은 그것(또는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구나'란 생각을 하곤 한다.






"재밌지 않으면 왜 해?"라는 말이 품고 있는 의미는, 단순히 문장 자체가 드러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재미'뿐만 아니라 숨겨진 재미까지 모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한 가지를 오랫동안 즐기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대단한 재능이자, 위대한 능력이라 생각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끊임없는 질문과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흥미로워하는 것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거침없이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타인의 힘을 빌리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만, 타인이 내린 답을 곧 자신의 답으로 여기는 사고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 만약 타인의 생각과 자신이 내린 결론이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자신의 판단으로 내리는 것과 누군가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이상을 좇기보다는 '현실주의자'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거나, 지루한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적은 편이다.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해 대비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재미도 없는 것들을 하면서 왜 소중한 하루를 낭비해야만 하는가. '남들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지금 생활도 충분히 좋으니까'라고 말하지만, 정작 스스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자꾸만 들진 않은가. 어쩌면 당신 또한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시기가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라. "재밌지 않은 걸 왜 나는 하고 있는 것일까?"라고 말이다. 그 순간부터 당신의 삶은 어제와 같지 않게 된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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