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참을성.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즉, 기다림이 필요함을 머릿속으론 이해하면서도 기다려야 할 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의외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자. '왜 기다리는 것이 필요할까?'라고 말이다. 오늘은 "기다리는 힘을 길러야 하는 이유"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무언가에 익숙해지기 위해선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 '절대적인' 시간에도 차이는 존재한다. 똑같이 새 학기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활달한 학생과 낯가림이 심한 학생 중 누가 새로 만난 친구들과 빠르게 친해지는가를 떠올려보라(물론 그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건 또 다른 문제겠지만). 이처럼 사람은 상대적으로 각자 '시간이 더 필요한 분야' 또는 '덜 필요한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지니고 살면 좋은 마음가짐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자신이 그것을 알더라도 실제로 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빠르게 익힌 영역이 있거나, 이미 능숙해져 있는 분야에서 그것을 접한 새로운 사람과 만난다고 상상해 보라. 친절하게 여러 번 알려주었음에도 자꾸만 똑같은 부분에서 실수하는 상대의 모습을 보면, 당신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답답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이다.
여기서부터 사람은 크게 2가지의 다른 행동을 보인다. 도와주거나, 도와주지 않거나로. 물론 상황에 따라 그 사람을 배려하는 것보다 빠르게 그것을 처리하는 게 중요한 순간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과는 별개로 자신의 답답함을 스스로 이기지 못해 상대방이 그것을 익힐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곧바로 "아니, 이걸 왜 못해?"라며 자신이 처리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상대를 답답해하며 자신이 일을 처리해 버리는 사람들 또한 상대를 진심으로 '돕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곧바로 나서는 이유 중엔 상대방이 자신의 실수에 당황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는 걸 견딜 수 없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건 기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상대를 돕고 싶어 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꼭 좋다고 볼 수는 없다. 결국 그러한 행동이 반복될수록 힘들어지는 건 자신이다. 상상해 보라. 새로 들어온 신입이 일처리가 늦다는 이유로 자신이 계속해서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결국 몇 달이 지나도 그것을 하는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다. 분명히 자신에겐 후배가 있고, 회사엔 각자의 업무가 있기 마련이다.
일을 잘한다는 건 모든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게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업무를 잘 배분하는 것도 포함된다. 누군가의 업무를 답답하다는 이유로 계속 뺏는다는 건, 결국 그 사람 자체를 무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의 일을 대신해준다고 해서 상대가 기뻐할 거라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처음 한 두 번이야 그런 마음을 먹을 순 있어도 그것이 지속되면 되려 관계를 악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에 걸쳐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게 불가능한 일임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몸이 먼저 움직이게 될 때가 있다. 물론 이것은 정말 대단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다. 나 역시 자신은 돌보지 않은 채 상대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이 그만큼 일반적이지 않고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선행이 결코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대가 없는 선행'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결과란 상대방이 그 배려에 익숙해져 챙겨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어버린다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도움을 받는 상대의 자립심과 사고력이 점차 사라지는 이유가, 바로 그 대가 없는 선행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도움을 받는다는 건 자신의 힘이 아닌 '타인의 힘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의미와 같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이러한 도움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주고받음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서로에게서 받은 도움을 서로가 다른 영역에서 또다시 줄 수 있음에 달려 있다. 한 마디로 관계의 흐름이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상식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은 타인의 도움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것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도움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했다가 시간이 지나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자신도 그 사람을 위해 어떠한 말이나 행동을 하려 한다. 그런데 이런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니라 단지 일방적으로 한쪽이 다른 쪽에게 '나는 네가 좋아'라는 이유로, 자신이 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주려한다면 어떨까? 아마 그것을 받는 사람은 더이상 자신에게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다른 고민을 할 것이다. 바로 '당신이 얼마나 빨리 나타나 이 문제를 해결해줄까'라는 고민 말이다. 이것이 정말로 당신과 그 사람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만약 당신이 기다리는 것이 힘든 유형의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당신이 지금껏 '상대를 위해'라고 생각하며 했던 행동들이 정말로 상대방을 위한 것이었냐고 말이다. 당신의 질문에 바로 답을 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대답을 재촉하거나, 당신의 생각만큼 무언가를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언제까지 그것만 하고 있을 거냐'며 닦달하거나, '이리 줘봐'라며 휘리릭 해버리는 행동들 말이다.
정말로 상대방을 사랑해서 한 행동들이었다면, 당신의 행동 전후에 반드시 '기다리는 시간'이 존재했어야만 할 것이다. 대답을 재촉하기 전 상대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주었어야 한다. 정말로 대답을 빨리 들어야만 한다면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설명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상대를 대신해 당신이 무언가를 처리했다고 해도, 다음에 상대방이 그것을 또 해야만 할 때 지금보다 잘할 수 있도록 노하우를 알려주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사랑해서 그런 거야" "내가 너 아끼니까 그랬지"라는 이유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 납득시킬 수 있는 말들이다. 과일이 충분히 맛있어지기 위해서는 충분히 익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닥에 먼저 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그 과일이 익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진정으로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기다리는 시간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사람을 기다릴 필요는 없다. 당신의 '기다림'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아닌, 그 마음을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