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는 심연을 거쳐, 다시 물 밖으로 솟구쳤다

by Quat


누구나 살면서 감명 깊게 본 영화가 한 편쯤 있을 것이다. 꼭 감동을 받아서 울 정도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괜찮네'라는 생각이 들거나, 주말 오후 별생각 없이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거나 "오, 이 영화? 오랜만이네."라며 처음 그 영화를 보았던 추억이 떠오르는 영화들. 지금껏 봐왔던 수많은 영화들 중에서, 오늘은 가장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와 함께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한 내 생각을 풀어보려고 한다.






브랜든 프레이저. 이 배우의 이름을 듣고 어떤 영화에 나왔는지 떠올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하면 많은 사람들이 '타이타닉'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미이라'. 내겐 큰 키와 금발,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남자가 총을 든 채로 되살아난 미라들을 물리치며 보물을 찾는 영화 속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런 그가 최근 할리우드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예전과는 다르게 불어난 몸매, 수북했던 머리카락이 빠져 훤히 드러난 이마,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눈빛과 떨리는 손.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개봉한 '더 웨일'이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으며, 2023년 오스카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에겐 '미이라' 이후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미이라'라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했지만, 정작 주연이었던 그의 삶은 정반대로 향했다.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무리하게 영화를 촬영한 탓에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인 상태였다. 거기다 아내와의 이혼소송에서 패소한 후 매년 10억 원의 양육비를 지급해야 했고, 영화계에서 거물인 사람에게 성추행까지 당했었다. 몸무게는 점점 늘어갔고 그러한 자기 모습에 자괴감이 들어,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푸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졌다.



그렇게 그는 약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그를 캐스팅하려는 관계자는 없었다. 간간히 조연 역할을 맡으며 그의 행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생기자, 몇 년 만에 토크쇼에 출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며칠 전, 유일하게 기댈 사람이었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고 그 충격으로 인해 그는 매우 불안한 상태로 TV에 나오게 된다. 이러한 내막을 알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불안한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희화화하고, 곧 인터넷엔 그와 관련된 밈들로 넘쳐났다.






그러다 그는 한 영화를 만나게 된다. 현재 상영 중인 '더 웨일'이라는 영화를. 일상이 무너진 삶을 살고 있는 영화 주인공과 브랜든 프레이저는 흡사 동일 인물 같았다. 마치 그를 위해 쓰인 시나리오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이미 10년 전에 쓰였음에도 마땅한 배우가 없어 묵혀두었던 이 시나리오는, 그를 만나 화려한 빛을 발했고 마침내 브랜든이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그는 2023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수상소감을 들려주었다.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그것을 견디며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이다. 자그마치 1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고통받았음에도 결국 다시 일어난 브랜든 프레이저. 그에게 그 말을 할 자격은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였다.






살다 보면 불현듯 힘든 순간들이 닥칠 때가 있다. 그런 시기가 스치듯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나기는 하는 걸까'란 생각이 들 만큼 고통의 끝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나 또한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브랜든 프레이저가 겪었던 일들을 보면서 '나는 저 정도의 힘듦을 견뎌본 적이 있었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고통의 경중이야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바가 다르겠지만, 그 정도의 큰 아픔들을 오랫동안 겪으며 마침내 이겨낸 경험이 내 삶엔 존재하지 않았다.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굳이 경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아픈 경험이 있었던 사람은,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도 깊게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커다란 상처는 그 당시엔 고통스럽고 힘들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은 앞으로 더 나아가거나,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더 웨일'엔 브랜든 프레이저의 삶 그 자체가 녹아들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진심이 담긴 그의 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감동받았고, 그로 인해 그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가진 것이 많기만 했던 사람이 소유한 것에 대해 매 순간 감사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많은 걸 가졌고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던 사람이 한순간 모든 걸 잃고 추락했다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우리는 현재 돈, 건강, 사랑, 우정 등 정말 소중한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종종 깨달아야만 한다.



어디까지가 바닥인지도 모를 정도로 추락하던 한 남자가 있었다. 10년이 지나서야 그는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들에 다시 손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모순적이게도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순간들 때문이었다. 어두컴컴한 심연을 헤엄치던 고래는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올 용기를 얻어, 자신의 찬란한 헤엄을 수많은 이들에게 드러내보였다. 예전만큼 멋진 모습은 아니지만, 진심을 담은 연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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