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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06. 2023

'어차피' 할 거니까, '어차피'란 말은 이제 그만!


말이란 무섭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내뱉는 말을 따라 똑같은 하루를 전혀 다르게 살아간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습하고 무더운 여름이라는 계절은 모두에게 같다. 하지만 그러한 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더운 날을 보내야 하는 거냐"라며 불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원해서 너무 좋다"라며 행복해하는 사람도 있다.



언제부턴가 애매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할 거면서 미리 불평불만부터 늘어놓는 사람이나, 자신은 하지 않을 거면서 괜한 참견을 하며 말을 거드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들이 있다. '어차피'나 '해봤자'와 같은, '그런 걸 도대체 왜 하느냐'라는 뉘앙스가 담긴 말들 말이다. 아이러니한 건 남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그들조차, 결국 '어차피'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사랑받고 싶지만 스스로 멀어지게끔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은 달라졌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내향적인 채로 살아왔다.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거나 대화를 하는 것 정도는 크게 힘들진 않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목적이 있을 때뿐이다. 처음 본 사람과 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면 먼저 말을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말을 하지 않는 게 나로선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살아온 시간에 비해 주변에 남아있는 친한 사람들도 많이 없는 편이지만, 그건 내게 있어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얼마나' 내 곁에 남아있는가 보다 '어떤 사람'이 곁에 있는가가 나에겐 훨씬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수백 개가 있다한들, 맘 편하게 연락할 사람 하나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무런 영양가 없는 얘기들로 몇 년을 아는 것보다 자신의 속마음을 진심으로 드러낼 수 있는 사람 한 명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뼈저리게 느끼고 살아가고 있다.


    




신기한 건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 간에 겹치는 부분이 크게 없다는 것이다. 성향, 취미, 현재 몸담고 있는 직업까지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들의 어떤 부분에 끌려서 지금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걸까'라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결국 그들 모두 마지막 순간엔 "군말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친해진 장소도, 시기도, 시간도 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단 하나의 특징이었다.



물론 그들 또한 사람이기에, 하기 싫은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종종 만나서 얘기를 할 때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말하며 힘듦을 표출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힘듦을 오래 가져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힘든 건 힘든 거고, 할 건 해야지' 힘든 시기에 놓인 그들이 공통적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자랑하듯 말하는 동시에, 그러한 처지를 근거로 공감받고 동정받길 원하는 부류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마치 세탁기에서 갓 꺼낸 수건에 남아 있는 물기를 탈탈 털어내듯, 그들은 그런 상황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편안해 보였다. '나 이렇게 힘들었으니까 위로해 줘'가 아니라, '나 정말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견뎌냈지'라며 되려 그 상황을 견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듯 말하며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냈던 것이다.






유독 자신의 힘듦을 위로받고 싶어 안달 난 것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마치 온 세상의 불운이 그 사람에게 쏠린 것처럼 보인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는데 마침 자신이 사려고 했던 물건의 재고가 다 떨어졌다거나, 일기예보를 보지 못하고 외출했는데 하필 그날 비가 내렸다던가, 모처럼 놀러 간 펜션의 옆방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통에 제대로 쉬지 못했다는 등 말이다.



처음엔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머릿속엔 '그 정도는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자꾸만 든다. 때로는 그들이 너무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좋은 쪽으로 해석을 하며 위로를 해주면,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자신의 앞에 숨 쉬는 방법을 까먹어서 30초가 넘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다가 마침내 헉헉거리며 "나 잠깐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어!"라며 해맑게 웃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사람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한 마디를 던진다. "그거야 넌 그 상황을 안 겪어봤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예전엔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지만, 이젠 그런 이들을 볼 때면 나는 빙그레 웃으며 속으로 외친다. '그래. 열심히 힘들게 잘 살아, 안녕!'


 




내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그토록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은근히 최선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기 때문이다. '의욕이 없다느니', '하루가 재미가 없다느니', '왜 항상 자신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냐'며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동시에 해야 할 것들은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왕 할 거라면 차라리 즐겁게 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어차피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라고 말하면서 결국 그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면, 굳이 그런 말을 왜 해야 하냐는 것이다. 물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자꾸만 벌어진다면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면 '아예 그것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왜 고려하지 않는가?



사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그러한 이들에게 더이상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이러한 뉘앙스의 말은, 곧 자신에게 건네는 '결투장'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들은 전사이자, 변호사이자, 군인 같은 면모를 보인다.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 상대방과 싸우며,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말을 이어나간다. '네가 현실을 몰라서 그렇다' '일이란 게 갑자기 그만둘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냐'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칼같이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등등 지금까지 자신이 했던 말을 스스로가 뒤집어엎어버린다. 그럴 때 나는 짐짓 심각하게 듣는 척 하지만 속으로 그들에게 묻는다. '뭘 어쩌라는 걸까'






결국 우리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삶은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기회를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이유를 밖에서 찾는다. 가난, 학벌, 인맥 등등. 물론 이런 요인들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 진실을 알고 있다. 그저 그 진실이 스스로 마주하기엔 너무나 불편하기에 외면하고 살아갈 뿐이다. 바로 현재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이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안목이 별로라는 것을 인정하기보단, 운이 없거나 과거에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사람을 먼저 탓한다. 모아둔 돈이 적은 사람은 스스로의 소비습관을 점검하기보단, 사회 구조를 비난하거나 부모 또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회사를 욕한다. 누군가의 탓을 할 순 있다. 다만 그러한 행동이 반복될수록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 사람은 언젠가 내 탓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 정도는 스스로 감수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할 거라면 최대한 기분 좋게 하는 걸 추천한다. 남들이 '정신승리'라고 하든, 결국 그것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지 않은가.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해 타인이 뭐라고 한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그 어떤 말을 하든 그들은 끝까지 그 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하기 싫은 것을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이유를 생각해 보라. 그것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면 말이다. 무엇을 하든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하루가 확연히 달라짐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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