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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l 18. 2023

오늘도 어머니와의 저녁식사를 거절했다


당신은 스스로를 어느 정도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받지 않아도 될 상처까지 모두 받은 후에야 진작 멈췄어야 할 것을 하지 않게 되거나, 뒤늦게 질 나쁜 상대와의 거리를 두고 있진 않은가. 많은 이들이 자기 자신을 좋게 포장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정작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오늘은 "스스로를 잘 지키기 위해 해봐야 하는 생각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아들, 뭐 해?" 스마트폰 화면에 뜬 메시지. 예전 같았으면 보자마자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내가 어떠한 말을 하든, 돌아올 답변이 무엇일지 이젠 안 봐도 훤하기 때문이다. 물론 예상되는 시나리오를 상상하면 살짝 짜증이 나긴 했지만 퇴근 후 혼자서 즐길 시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화장실을 가면서 빠르게 메신저를 켠 뒤, 솔직한 마음을 조금 더 과장해서 표현하기로 마음을 먹고는 두 엄지손가락을 애써 신나게 놀려댔다. "너무 잘 지내고 있었지. 어머니는 잘 지내시나요?"



결과는 뻔했다. 부모가 먼저 연락을 해서 되겠냐느니, 가족이 이러면 안 된다느니. 누가 보면 마치 몇 년 동안 얼굴 한 번 안 보고 산 것 아니냐고 물어봄직한 말들이었다. 몇십 년을 함께 살다가 떨어져 산 지 불과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뒤로는 뭐, 역시나 뻔했다. 어떤 말이 오든 '네!' '네~'를 몇 번만 하면 금세 연락이 뚝 끊어지곤 했다. 솔직히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말들이기도 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런 말들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오직 '말'에서 그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엔 하도 '집에 언제 올 거냐'라는 말씀을 하셔서 퇴근 후 본가에 간 적이 있었다. 오는데 1시간, 가는데 1시간. 정작 집에 있었던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간다는 걸 두 분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저녁을 먼저 드시고 있었다. 거기까진 이해했다. 정말로 이해가 안 됐던 건 내가 저녁을 먹는 내내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계셨다. 어머니와도 잠깐 근황을 묻고는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저녁을 다 먹고 잠깐 쉬고 있는데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피곤하겠다. 이제 그만 가라." 그 뒤로 나는 더 이상 평일에 본가에 가지 않는다.



서로가 동일한 개념에 대해 너무나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대화를 통한 타협이 불가능할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하는 편인가? 개인적으로는 그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게 서로에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서로가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거리의 정도는 다르겠지만, 대화 자체가 힘든 상대와 '명목상 어떠한 관계'라는 이유로 계속해서 얼굴을 본다면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것이다. "그래,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당연히 거리를 둬야지!" 하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실제로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했던 말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관계가 당신이 만나고 있는 '연인'이라면? 하나뿐인 '가족'이라면? 당신은 그들과 쉬이 거리를 둘 수 있는가. 아마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왜 그 사람과 헤어지지 않냐고 친구들이 아무리 만류해도, 자신 또한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라. 속으로 한없이 원망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만큼 끔찍한 상상을 해도,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언어의 사슬에 묶여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그 끈을 꽉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물론 나 또한 특정한 관계를 쉽게 끊는다는 게 어렵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그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손절이니 뭐니 누구나 말은 쉽게 하지만 그러한 시기가 찾아왔을 때 단호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나는 거의 보지 못했다.



누군가와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건,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건, 타인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아이러니한 점 중 하나는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자신은 타인에게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러면서 누군가와 거리를 두는 것에 대해선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과 '실제로 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듯하다.






'스스로를 얼마나 지킬 줄 아는가'라는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나는 사람들이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유형은 다음과 같다.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알고,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

스스로 지키는 방법은 모르지만,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

스스로 지키는 방법을 알면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

스스로 지키는 방법도 모르고, 지키지도 못하는 사람


삶이 원하는 대로 잘 풀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첫 번째와 두 번째에 해당했다. 첫 번째 유형인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는지 방법을 알고, 그것을 제대로 실천하는 사람들은 아주 적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 자신을 유지했기에 쉽게 무너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타인뿐만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유형인 사람들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좋은 사람'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록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진 못했지만, 그들 곁엔 그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들 곁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지켜주었고, 그들 또한 자신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알았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보다 세 번째에 속한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몰라서 못한다'는 이해할 수 있지만 '알면서도 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 번째 유형에 속한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단점 2가지라고 한다면 '자기 합리화'와 '자기 연민'에 있다. 이들은 자신이 어떻게 하면 지금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한다. 문제는 자신이 그것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자꾸만 남 탓으로 돌리고, 그로 인해 자기 자신을 측은하고 가엾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을 고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공감해 주고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들만을 곁에 두려는 습성이 있었다. '나는 이렇게나 불쌍한 사람이니까'라는 망상에 빠져, 자신의 진짜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은 채 그저 '네가 정말 힘들었겠다' '그 사람이 잘못했네'와 같은 감정적인 위로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그런 힘듦을 이겨낸다기보다, 잊어버리기 위해 순간의 자극에 흥미와 매력을 느끼곤 했다. 술, 담배, 이성 등 한순간의 짜릿함만을 추구하면서 "언제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헛된 희망을 꿈꾸며 쓰러지듯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관계를 이어나가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가족다워야' 가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다른 이성에게 눈을 돌리진 않았을 것이다. 친구가 정말로 당신을 배려하고 생각했다면 매번 약속시간에 늦지도 않았을 것이며, 당신이 만나자고 하기 전에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했을 것이다. 결국 말보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을 실천하려는 '행동'에 달려 있다.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은 일부러 그것을 뽐내지 않는다. 티 내지 않아도 자연스레 티가 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스스로를 지킬 줄 아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러한 사람들 특유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도 않지만 그들 곁엔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모이기 시작한다. 실속 없이 떠드는 것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처음엔 인기가 많겠지만 가진 밑천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의 말은 소음과 같고 그들의 행동은 오버스러운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면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환경보호와 에너지절약에 침을 튀기며 쉴 새 없이 떠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손에 있는 쓰레기를 길바닥에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해놓고 취한 채로 욕설을 하는 게 아니라, 취하더라도 정신을 붙들고 책임질 수 있는 말만 하는 것. 당신은 어느 쪽에 속한 사람인가. 말부터 앞서는 사람인가,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 누가 당신에게 지적하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당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뜨끔하더라도 결국 그때뿐이다. 100번의 결심보다, 전과 달라진 한 번의 행동이 당신에게 더욱 가치 있다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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