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당신에게 요구할 때

by Quat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몸이 아파도,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해도, 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음에도 어떻게 서든 그것들을 모두 해내고 원래 하던 것들도 해야만 한다는 것. 혼자 살기 시작하면 아무리 피곤해도 누가 대신 방을 청소해주지 않는다. 밥을 먹고 나서 귀찮더라도 설거지는 스스로 해야만 한다. 어떤 행동을 하면 오롯이 내 흔적이 남는데, 그 흔적을 치우는 것도 본인의 몫이 된다. 문득 '나만 이렇게 힘든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 당신은 그 순간을 어떻게 견뎌내는가. 오늘은 "자신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 순간이 닥쳤을 때"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해야 한다'와 '왜 해야만 할까'. 우리의 마음속엔 이 두 가지 섬이 공존한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해야 한다' 섬에서 보내며 일상을 살아간다. '해야 한다' 섬에서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바로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밥을 먹을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그 밖에 일을 할 때도 그저 '한다'는 행위에 집중한 채, 크게 쉬는 시간 없이 계속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 밤이 되고 어두워져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그때서야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해야 한다' 섬에서 보낸다. 왜냐하면 '해야 한다' 섬에서는 크게 고민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기 때문에 걱정을 할 시간조차 없다는 게 이 섬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따금씩 우리가 이 섬에서 행동을 멈출 때가 있다. 바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이다.



매일같이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다 보면 체력적인 한계가 찾아온다. 숨을 헉헉거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아주 오랜만에 제자리에 멈춰 선다. 아무렇게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가쁜 숨을 몰아내 쉰다. 흐르는 땀 때문에 눈조차 뜨지 못하고 한참이나 숨을 고르다가, 눈가에 맺힌 땀을 손으로 대충 털어내고 게슴츠레 눈을 뜬 채 바닥을 멍하니 쳐다본다. 그때서야 바닥이 주홍빛으로 물들었다는 걸 보게 된다. 고개를 들자 강한 빛이 눈을 때리고, 본능적으로 한쪽 팔을 들어 쏟아지는 빛을 가로막는다.






이윽고 눈이 빛에 익숙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자, 서서히 팔을 내리자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음을 알게 된다. 커다랗고 밝게 빛나는 해가, 점차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해가 바닷속에 잠길수록 바다는 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잔잔히 넘실거리는 파도를 만난 햇빛은 아주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온 사방에 퍼지고 퍼져, 물 위에 올라타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파도는 춤을 추듯 너울거리며 자기들끼리 부딪힘과 동시에,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은 그의 땀을 닦아주려는 듯이 머리카락에 닿았다가, 볼을 스쳐 지나갔다가, 팔을 지나 마침내 다리까지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넋을 놓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가슴 한편이 욱신거리는 듯하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살고 있었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든 당신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발가락에 바닷물이 닿자, 처음엔 그 차가움에 화들짝 놀라 다시 두세 걸음 뒤로 물러나지만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어디로 가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그러한 불확실함조차 가슴속 두근거림을 이길 수는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우리는 무언가를 하며 살아간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그들조차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행동반경이나 행위의 다채로움이 극히 적긴 하겠지만 말이다.



아무튼간에 나이를 먹을수록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존에 하던 것들에 더해져, 또 다른 새로운 것들을 계속해야만 하는 삶을 살곤 한다. 어린 시절엔 나 하나만을 위해 삶의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는 데에 달려 있다.



여전히 내 앞가림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챙겨야 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간다는 건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들에 대해 '마땅히 해야만 하는 것'이라 여기고 자신의 업에 책임을 다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욱 체감하게 되는 건, 세상이 '냉정하다'라는 사실뿐이다.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고 해서 상대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진 않는다. 그러한 행동을 고깝게 여기며 근거 없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로는 당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상대가, 당신의 기대를 저버리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순간, 우리는 '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돌을 던진다. '왜'라는 꼬리표를 단 채로 말이다. 이를 악물고 잘 해내려 노력했음에도 아무도 스스로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한 인간을 좌절하게 만들기엔 충분하다. 다행히 금세 그러한 생각을 털어버리고 다시 움직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어떤 이는 아예 정반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건 그들이 자신만 무너지기보단 다른 사람들까지 함께 무너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자신을 실망시키게 만들거나 피해를 준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타인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말하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조차, 그들이 지적하는 현상의 모습들을 가진 채 살아간다. 타인을 이기적이라 칭하는 사람들조차 그 누구보다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쓰레기'를 만나 가슴 아픈 이별을 한 사람도, 다른 사람을 만나 '쓰레기'같은 연애를 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이성적인 사람이라 칭하는 사람들 중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닥쳤을 때에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사람을, 나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빙빙 돌려 말하는 듯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단 하나다. 우리가 그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그 누구를 욕하거나 탓하기란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타인을 그러한 상황에 밀어 넣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타인을, 세상을, 환경을 자주 욕하고 탓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관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해서 힘든 상황을 본인의 탓으로 돌리란 것은 아니다. 물론 좋지 않은 상황이 자꾸 본인에게만 일어난다는 건 어느 정도 본인의 잘못도 있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런 경우는 배제한 채, 대체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노력했음에도 부정적인 일들이 발생하는 건 당신의 탓이 아니지 않은가. 때로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강철 멘털을 키우라는 게 아니다. 단지 어느 정도 시련과 스트레스에는 버틸 수 있는 힘이면 충분하다. 그 이상 당신을 덮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지로 견디거나 맞서는 건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 모든 것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겠는가? 적당히 힘들다고 느껴질 때 쉴 줄 안다면 조금만 쉬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버티다가 마침내 쓰러진다면 회복에 엄청난 시간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



"적당한 씩씩함"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현명한 사람은 이길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이기려 들지 않는다. 현재 자신이 그것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되,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매일을 살다 보면 자신이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무언가와 대등히 맞설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요구가 당신을 덮친다면, 그것들을 모두 수락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다. 인정하고, 표현하고, 행동하라. 그로 인해 당신의 삶이 전보다 평안하고 부드럽게 흘러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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