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 손이 내 손이 아닌 것처럼

by Quat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할수록,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하고픈 욕구가 생기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는 관계없이 조금 더 자신을 생각해 주길 바란다. 일을 할 땐 '이것만큼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 운동을 할 땐 '이 정도는 해내야 한다'는 생각.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그 대상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걸 누구보다 알면서, 당신 또한 오늘 하루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짜증과 화가 치솟았던 순간은 없었는가. 오늘은 "스스로의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리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렇게나 열심히 쓴 글인데 왜 조회수가 낮을까'라던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평소보다 훨씬 적게 먹고 움직이는데 왜 이렇게 몸무게는 그 대론 거야'라던가, 연애를 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나는 널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넌 왜 날 사랑해주지 않는 거야'라는 생각을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그 생각 뒤에 따라오는 후회와 자책 또한 경험했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실력이 좋은 사람들도 많으니까', '여태까지 먹은 게 있는데 빨리 빠지는 게 이상하지', '생각해 보면 걔도 자기 나름대로 날 사랑해 줬었는데'와 같은 생각들 말이다. 나 또한 최근에도 이러한 억울함과 자책의 굴레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요점은 하나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들이 꽤나 터무니없으며, 바란다고 해서 쉽게 이뤄지지 않을 거란 걸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랄 수 없는 걸 바라고, 평생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가며 살아간다는 것. 이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삶이 전혀 다른 의미로 힘들어지게 된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람,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 모두 행복한 일상을 보내기란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생각을 하며 삶을 살아갈 때의 문제점은 '눈앞의 현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유독 자신의 삶이 좋게만 흘러가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 자신에게 발생하는 좋지 않은 일들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과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그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피해를 끼친 모든 사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탓이야!"



적당한 수준의 이상적인 태도로 삶을 살아가면 긍정적인 사고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된다. 마음속에 너그러움이 차지하는 공간이 전보다 늘어나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또한 넓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이 지나칠수록, 자신이 그리는 이상이 마치 정답처럼 여겨지게 된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유토피아를,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사랑이란 로맨틱하고 낭만적이 여야 하고, 일을 할 땐 자신이 기울인 노력과 능력에 비례한 보수를 받아야 하며, 가족이란 웃음이 넘치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서로를 아껴주는 존재여야만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곁에 누군가 있는데도 혼자 있을 때보다 더욱 외롭다는 감정을 느끼곤 하며,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하더라도 별 능력도 없이 연차만 오래된 상사가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부모가 남보다 못할 때도 있고, 자식이 부모를 때리거나 입에 담기 힘든 험한 말을 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자신이 그리는 이상과 처한 현실의 차이가 클수록, 이상적인 사람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길' 선택한다. 사랑을 부정하고, 일을 부정하고, 가족을 부정한다. 사실 그 모든 것에서 동떨어진 존재가 자신이란 건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은 어떨까. 최근 들어 이러한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나치게 현실적인 사람이라기보단,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현실적이라 칭하는 현상이 잦아졌음을 느낀다.



누군가의 도전을 응원하기보단 "이제 와서 그게 되겠어?"라고 말하는 걸 '현실적인 조언'이라고 부른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기계처럼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삶을 '현실적인 삶'이라 칭한다. 부동산과 비트코인, 주식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현실감각이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다. 정작 그렇게 공부를 하고도 투자로 돈을 날린 사람들 또한 수두룩한데 말이다. 많은 돈을 잃고도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 또한 경험이지!"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숫자'로만 세상을 본다. 마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을 세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들의 시선에서 '성공한 사람'이란 수많은 숫자가 찍힌 통장을 가진 사람이다. 비싼 차, 비싼 집, 비싼 시계, 비싼 가방. 수없는 0이 붙은 것들을 더 많이 소유할수록 그들의 세계에선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산 사람이라 불린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는 건, 돈이 부족해서다" 돈, 돈, 돈. 그렇기에 그들은 보이는 것들로 사람을 나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것들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그들의 세계에선 더욱 상위층 대접을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들의 가장 안타까운 점은, 오로지 숫자로만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성향, 인격, 배려심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이 배려심도 많다", "돈 많으면 착하다", "나보다 잘 살면 형이지" 그렇기에 그들은 결코 사람을 편하게 만나지 못한다. 스스로가 타인을 그러한 기준으로 평가하기에, 다른 사람 또한 자신을 그렇게 평가할까 봐 쉽게 속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속마음을 터놓을 사람 하나 없이, 혼자 살기엔 지독하게 넓은 집에서 고독하게 사는 걸 과연 행복하다 할 수 있을까.






이상과 현실. 완벽한 중간에서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불안한 외줄 타기를 하는 것처럼 때로는 이상적으로, 때로는 현실적인 쪽으로 기울어진 채 삶을 살아간다. 어느 정도 기울어진 채 살아가는 건 그럴 수 있지만, 아예 한쪽으로 몸이 쏠리면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졌건 간에, 그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자신이 쏠린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지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에게 비난을 쏟거나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하지 않는 것. 이 2가지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 말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모든 것을 부정하려 들지도 말라. 이해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받아들이되,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부정하거나 자기 식대로 바꾸려 들어선 안된다. 상대방의 손을 잡는다고 해서 그 손이 자신의 손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고 아낀다는 이유로 상대를 자기 입맛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그런 생각으로 타인을 대하는 사람일수록, 서서히 혼자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 것을 수도 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준다는 건,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사람은 스스로를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대한다. 인간은 그 어떤 존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타인을 대할 땐 적어도 자신을 대하는 모습 그 이하로 대하곤 한다. 솔직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솔직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 사람은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힘들다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하든 억지로 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건 없으니까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또한 억지로 무언가를 하기보단, 그 어떤 것이 되었든 진심으로 무언가를 대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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