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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Aug 27. 2023

'익숙한 불행'으로 우리가 놓치는 것들


당신은 매번 숨을 쉴 때마다 감사함을 느끼는가? 길을 걸으면서 튼튼한 두 다리를 가지고 있음에 고마움을 느끼는가? 노을로 물든 하늘을 보며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데에 벅차오른 적이 있었는가? 애석하게도 우리는 매일 느끼는 모든 익숙함에 고마움을 느끼며 살아가진 않는다. 그것이 바로 '익숙함'이 가지는 힘이다. 자신이 상대에게 베푸는 배려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는 상대를 보며 '괘씸하다'라고 느끼면서, 정작 본인이 타인에게 받는 배려에 대한 둔감함은 유야무야 넘어가기 마련이다. 이것은 좋은 것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익숙한 불행으로 인해 우리가 놓치는 것들"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쓸데없는 데에 힘을 빼고 있다는 걸 느낀 적 있는가? 순간의 욱함을 억누르지 못해 던진 한 마디로 인해 관계가 끊어진 사람도 있고,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 또는 장소에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이는 사람도 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얼까. '익숙한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민함이 지나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갑자기 화가 솟구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수없이 다짐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면 울분이 미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마냥 참기엔 너무 답답하고, 바로 말하기엔 상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아 숨을 골라보기도 한다. 그러다 선을 넘으면 그동안 참았던 말을 기관총처럼 와다다 쏟아내는 것이다. 그런 후에야 머릿속엔 '아차'하는 생각과 함께, 상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생겨난다.



이와는 반대로 애먼 곳에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을 만나면, 다른 회사에 가면 분명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대접을 받을 텐데 꿋꿋이 그 자리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이나 지인들의 권유에도 "난 괜찮아. 지금도 좋은걸"이라고 웃으며 대답하지만, 때로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시 여기는 듯한 대접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화가 치미는 것이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면, 재빨리 스스로를 달랜다. '그 사람도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거야. 다른 곳(사람)을 가더라도(만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그 사람 입장에선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렇게 겨우 진정을 하지만 가슴 한 편 찝찝한 기분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마음들은 모두 '익숙한 불행'에서 비롯된다. '익숙한 불행'이란, 본인에게 좋지 않은 것이란 걸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이미 그런 상황들에 익숙해져 그것을 합리화하는 현상을 뜻한다. 누구나 익숙한 불행을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술을 마신다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친구 또는 연인에게 버릇처럼 의지하려는 행동 등 범위와 종류가 매우 광범위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익숙한 불행'의 종류가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더욱 꼬인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익숙해졌을 뿐이지 불행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까 말이다. 스스로 아무리 합리화를 하고, 괜찮다고 위로를 하더라도 잠깐 괜찮아질 뿐 또다시 그 상황에 처하면 쳇바퀴처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이 가장 무서운 이유는, 시간이 갈수록 그것에서 벗어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선 '이건 아니야'라고 몇 번이고 생각하지만, 이미 몸은 벌써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렸을 적부터 부모로부터 폭언을 들으면서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그러한 말을 듣더라도 쉽게 화를 내지 못할 수 있다. 이미 그 상황이 자신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은 할 수 있어도, 상대에게 자신 또한 화를 낸다는 건 어려울 수 있는 것이다.



사람 간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몇 년 전 다양한 커플들과 매일같이 상담을 하면서 내가 놀랐던 건,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잘못을 상대방이 저질렀음에도, 상대가 몇 날 며칠을 용서를 구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받아준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 그들의 관계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용서를 받아들인 쪽은 상대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했고, 용서를 구한 쪽은 자신에 대한 의심을 놓지 못하는 상대를 원망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하다가 결국 관계가 끊어진 순간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단호해져야 할 때 단호하지 못했고, 화를 내야 하는 순간에도 웃고 넘어간 날들도 많았다. 관계를 이어나가선 안 되는 사람과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려고도 해 봤고, 그런 행동들이 얼마나 나 자신을 망치는지도 잘 알게 되었다. 주변에서 숱한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결국 사람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된다는 걸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익숙한 불행'을 좀 더 멀리 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에 익숙해질수록, "또 다른 긍정적인 가능성"을 놓치게 될 일이 많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던 내가 올해 2월 한 달 동안 출근 전 새벽조깅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내가 자고 있는 동안 세상은 쉼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듣기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내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익숙한 불행' 하나와 조금 더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익숙한 불행'들과 하나둘씩 거리를 두게 되자 일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가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할 수 있고 매일 만나도 몇 시간을 떠들 수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중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하고, 경험하는 모든 걸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비록 당장은 힘들지라도 그러한 경험이 시간이 지나서 오히려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이것을 감당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주 단순하게 생각힌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 말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올바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나 또는 상대방이 무언가를 힘들어서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정말로 힘든 것이냐고 반문해 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나오곤 했다. 질문을 곱씹다 보면 사람은 자연스레 합리화를 하기에, 첫 질문에 자연스레 떠오른 답을 따라가다 보면 나름 괜찮은 결과들이 나왔던 것 같다.



익숙해졌다고 해서 모든 게 좋아진 건 아니다. 무엇을 하든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좋지 않은 것을 해도 인간은 처음보다는 적응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적응을 했기에, 전보다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의 장점들을 더욱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있는 그곳이, 만나는 그 사람이 마냥 좋아서 익숙해졌다기보단 당신이 견뎌왔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이라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러니 나는 당신이 '익숙한 불행'에 더 이상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행동하지 못하면, 그런 시기가 언제 또 올진 당신도 알 수 없게 되니까 말이다. 물론 그 모든 선택을 내리는 사람은 삶에서 오직 단 한 명, 당신뿐이라는 사실 또한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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