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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Sep 04. 2023

어리게만 대하면 자신이 마냥 어린 줄로 안다


최근 선생님들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식들이 자주 보이는 듯하다. 초등학생이 교실에서 선생님을 폭행했다느니, 학부모가 학교로 찾아와 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폭언을 퍼부었다는 등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선생님인 지인들 중에서도 퇴근 후에 학부모로부터 메신저나 전화가 자주 온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어렸을 때만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으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여겼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정반대로 바뀌어버린 것일까? 오늘은 "어린아이일지라도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예전에 비해 점점 결혼하는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 최근 본 영상에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나이 자체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보니, 20대 부부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또한 결혼을 하더라도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도 많다. 이른바 '딩크족'이라 부르는 부부이다.



설령 30대에 결혼해 아이를 갖길 원하더라도, 30대가 된 이후에 아이를 가진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체력적, 경제적으로 육아를 한다는 게 힘든 요즘엔,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싶지만 마땅한 배우자가 없는 여성들이 '냉동난자' 등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신기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힘들게 가진 아이가 부모에겐 얼마나 소중할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몇 년 전부터 육아 관련 프로그램들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부모의 행동이 얼마나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엄격한 부모'보다 '다정한 부모'가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아이와 함께 주말을 보내거나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긍정적인 부분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변화엔 '양면성'이 존재한다. 전보다 아이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되면서 좋은 점들도 생겨났지만, 그에 반하는 부분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아이에 대해 지나친 과보호'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것만 해주고 싶고, 아프지 않게 자라나길 바라는 건 모든 부모들이 가진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상처도 주지 않기 위해 되려 부모가 자식이 받을 모든 상처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그것을 본인이 대신 받아내려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없으면 아이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존재'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고 신체적인 능력과 지식들이 쌓여감에도, 서툴고 느리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선뜻 무언가를 맡기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다. 어떤 일을 맡겨놓고도 급하다는 이유로 다시 그것을 본인이 해버리기도 한다. 한두 번 정도야 그럴 수 있다 쳐도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아이의 독립심과 책임감은 자꾸 줄어들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의사결정을 내린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어쩔 줄 몰라하며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거나 "난 다 좋아"라며 대부분 타인의 의사결정에 동조해버리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과보호는 아이의 정서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보호로 인해 한번쯤 겪어볼 만한 상처도 없이 자라다 보니, 약간의 상처에도 감정이 심하게 요동치는 것이다. 분명히 자신의 잘못임에도 그것을 '상대방의 탓'으로 돌리거나,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이 오랫동안 유지되다 보니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게 돼버리는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도 그렇지만, 결국 그것은 돌고 돌아 다시 부모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부모가 자식을 여전히 어리게만 보고 믿고 맡긴 적이 없다 보니, 나이를 먹더라도 자식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여전히 부모가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부모의 배려를 자식의 입장에선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길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늘어난다.



결국 사회구조의 변화, 부모의 과잉보호, 아이의 의사결정능력 저하,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 등의 악순환 속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그로 인한 결과를 모두 떠안아야 하는 결과가 나타난 게 지금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입장에선 '고민 끝에 겨우 던진 말 한마디'겠지만, 그러한 고민이 묻어나는 수십 개의 메시지를 받고 모든 책임을 져야하는 건 그 또한 누군가의 자식일 단 한 명의 교사이다.






내 자식이 나 이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다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다. 그러나 내 아이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가 질 나쁜 교사, 못된 친구들 때문이 아닌 자신의 지나친 보호와 사랑 때문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부모들이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어떤 곳을 가든 이상한 사람들 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부모도, 아이도, 교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문제가 있는 한 둘이 있다고 해서, 해당 집단 전체가 그럴 것이라 짐작하고 의심하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할수록 힘들어지는 건 다름 아닌 태어날 우리 다음 세대들이다. 부모도, 자식도, 교사도 사람이기에 모두 실수를 할 수 있다. 실수의 경중에 따라 처벌은 다르겠지만, 때로는 실수를 그저 실수라고 생각하고 조금은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는 관용이 사회에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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