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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Sep 07. 2023

그 정도로 힘들진 않으니까, 공감안해주셔도 돼요


날씨가 조금씩 선선해지고 있다. 이러다 언제 또 추운 바람이 불어닥칠지 모르기에, 주말만 되면 괜히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날씨와는 정반대로, 여전히 사회는 차갑고 흉흉한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묻지마 범죄, 진상 손님, 폭력, 폭언 등 우스갯소리로 귀신보다 '사람'이 훨씬 무섭다는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거릴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건,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피해를 입혔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은 넘쳐나는데 정작 상처를 준 사람은 없다는 것. 현재 우리 사회엔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오늘은 "비뚤어진 자존감과 공감의 결과"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요즘 SNS를 보다 보면 스마트폰이 따뜻해지다 못해, 뜨거워져 손이 데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바로 피드에 넘쳐흐르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 덕분이다.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늘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잘했다고 스스로 격려해 주세요" 힘든 순간에 이러한 말들은 커다란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매일같이 이런 글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유치원에 와 있는 건가'라고 말이다.



물론 나 또한 공감받는 것을 좋아한다. 자신의 말에 공감해 주는 사람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그러한 공감이 때로는 너무나 '지나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따뜻함을 넘어 뜨거울 정도로 말이다. 힘들어서 건네는 위로와 공감은 감사하지만, 정작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앞다퉈 공감을 해주려는 듯한 피드들을 보다 보면 '그렇게 힘든 사람이 정말로 많은 걸까'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누구나 각자만의 힘듦과 어려움이 있다. 상황이 달라져도 그 상황에 맞는 스트레스는 어김없이 우리를 덮쳐온다. 혼자 지낼 땐 '누군가 만나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막상 연애를 시작하면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게 연인과 헤어지게 되고 또다시 솔로가 되면, 혼자 지낼 때 받던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덮쳐오게 된다.



사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가장 소중하기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스스로를 가장 힘들다고 여긴다. 학생일 땐 돈이 없어서, 직장인이 되면 업무에 시달려서, 솔로일 땐 외로워서, 연애를 하면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해서. 가지지 못했을 땐 '가지지 못한 스트레스'를 받지만, 원하던 것을 가지게 되면 '가진 이유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렇듯 우리의 나이와 성별, 직장, 학벌 등에 관계없이 우리는 매 순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상황을 머릿속으론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각종 SNS에 넘쳐흐르는 공감과 위로의 말들이, 그러한 현상을 입증한다. 자신이 현재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고, 나보다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 사람들에 비해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만을 바라보며 자책하고 분노하며 슬퍼한다.


 




그러면서 '공감'과 더불어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가 바로 '자존감'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받길 원하는 동시에, 자존감을 높이고 싶어 한다. 이렇다 보니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충족시키길 바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바로 "타인의 공감을 통해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유형"들 말이다.



재밌는 건 스스로를 자존감이 높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를 하다가 자신이 공감받지 못했을 때 표정이 확연히 굳거나, 심하게 주눅이 들거나, 벌컥 화를 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는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먼저 정말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굳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는 자존감이 높아' 따위의 말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한들, 명확한 근거가 없는 비난에 대해서는 그다지 개의치 않아 하는 태도를 가져야 자존감이 높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타인으로부터 받은 공감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그들이,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겐 그 누구보다 냉철하고 현실적인 말들을 쏟아낸다는 것이다. 자신은 무조건적인 공감을 받고 싶어 하면서, 그들 자신은 그것을 결코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게 웃기지 않은가!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따뜻한 공감'을 주었지만, 그들이 받은 건 '차디찬 조언들'이었다.






요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각자 '자기만의 이글루'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음으로 된 차가운 집에 들어가 나오질 않는다. 그들 곁에 가기만 해도 한기가 느껴진다. 심지어 나의 배려들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사는 집이 녹을까 봐 다가가는 것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다. "바깥도 이렇게나 추운데, 안은 더 춥겠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의 집에 초대받아 이글루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따뜻한 기분이 든다. 놀란 당신의 표정을 보며 그들은 뿌듯한 듯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우리 집은 이만큼 따뜻한데, 누군가 들어오기엔 너무 좁아서 아무나 초대하진 않아. 누군가 밖에서 우리 집을 보면, 집 안에서 내가 너무 추워서 덜덜 떨거라 생각할 거야.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우리 집이 따뜻하단 걸 말이야." 분명히 바깥에 비하면 따뜻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상대가 말하는 것처럼 그 정도의 따뜻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따뜻한 건 맞으니 당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하지만 그때부터 당신은 상대와 함께 있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여기에 초대한 건 너뿐'이라는 둥, '이만큼 따뜻한 이글루는 없을 거다'라는 둥 언제부턴가 상대가 당신에게 무언가 대단한 것을 베풀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와 동시에 자신이 베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당신이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거나, 자신의 말에 당신이 공감을 해주지 않으면 토라진 상대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결국 당신은 이글루에서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러자 상대는 분노에 찬 얼굴을 한 채 당신에게 소리친다. "넌 정말 나쁜 사람이야!" 그런 상대를 보며 당신은 속으로 말한다. '도대체 너와 나, 둘 중 누가 더 나쁜 사람인 걸까'






앞서 말했듯이 누구나 각자의 힘듦을 갖고 살아간다.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말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어떤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가 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그 자체'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렇게나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데, 이런 나한테 스트레스를 준다는 건 네가 잘못한 거야'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극단적인 결론을 내려버리는 것이다.



때로는 따뜻한 공감이 고플 때가 있다. 하지만 매일 그 공감만을 원하며 살아간다는 건, 상대방 또는 환경이 문제라기보단 나 자신이 변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들을 땐 너무나 달콤하고 마음이 안정되는 말이지만, 그것에만 의존해 살아간다는 건 결국 그러한 공감이 없을 때 나 자신이 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러한 일상을 사는 사람이 어떻게 자존감이 높다고 할 수 있겠는가.



생각이 많아질수록 힘든 건 오로지 당신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오히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어느 정도 에너지가 있다면, 당신 앞에 닥친 시련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아야 한다. '나한테만 왜...'라는 자기 연민에 빠져있기보다 "이런 개 같은 세상!"라고 시원하게 욕하며 앞으로 걸어 나갈 줄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같이 세상과 현실에 맞서다 문득 지쳤다고 생각이 들 때 받는 공감이야말로,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매일 받던 공감들이, 오히려 당신이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스스로 내려놓게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떠올려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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