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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03. 2023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미루지 마세요


당신은 당신만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어느 누구도 타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삶의 선택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스스로 결정했다고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매번 가족이나 연인, 친한 친구 등 특정한 누군가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받은 후 무언가를 선택한다면, 과연 그 선택을 온전히 자신이 내린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늘은 "결정적인 순간에 선택을 미루지 않는 태도"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최근 몇 년 간 내가 가장 많이 듣고 봤던 키워드 2가지를 꼽아보자면 바로 '공감'과 '자존감'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공감받길 원하고, 높은 자존감을 가진 채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즉, 사람들이 바라는 만큼 충분히 공감받지 못하고 자존감이 높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공감과 자존감이라는 키워드가 많은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는 걸 뜻한다.



누군가는 이러한 생각에 의문을 던질 것이다. '저는 충분히 공감받고 있고 자존감이 높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바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돈이 많은 사람도 현재 자신이 소유한 부를 더욱 늘리고 싶을 수 있으니까. 단,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무언가를 많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그것으로 인한 만족감'은 전혀 별개라는 것이다.






스스로 충만하다고 느끼는 감정은 매우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군가에겐 5만 원이라는 금액이 밥 한 끼 먹기에도 부족하겠지만, 어떤 사람에겐 아주 거액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무언가에 대해 충분하다고 느끼면 그것을 더욱 가질 필요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현재 당신이 무언가를 바라고 있다는 건, 그것이 당신에겐 여전히 부족하다는 걸 의미한다.



"난 충분히 사랑받고 있어. 그렇지만 네가 날 더 사랑해 주길 원해" 이 문장의 진정한 의미는 "너의 사랑이 부족하니까 날 더 사랑해 줘"와 같다. 상대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음을 '이해'는 하지만, 그러한 사랑의 크기가 자신의 기준에 충족되는지는 별개라는 것이다. 여기서 당신이 진정으로 상대의 사랑에 만족하기 위해 해야 할 선택은 2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기준을 전보다 낮추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기준만큼 당신을 사랑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당신도 알고 있듯, 많은 사람들은 이 2가지 선택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자신의 기준은 고수한 채, 상대가 자신을 위해 더욱 많이 사랑해 주길 바라며 살아간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힘든 연애를 하고, 사랑에 아파하며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어 한다.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그렇게 행복하고 싶고 스트레스를 받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정작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차일피일 선택을 미루기만 하다가 더욱 힘들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중대한 결정권을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기도 한다. 그래놓고는 매번 '힘들다', '못살겠다', '죽겠다'와 같은 말을 내뱉으며 주변 사람들까지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는 말 그대로 실수이다. 몰라서 못하거나, 알면서도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걸 실수라고 한다. 하지만 실수가 여러 번 반복되면 더 이상 그것은 실수가 아니다. 그저 원래 자신의 본모습인 것이다.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마음, 좋지 않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그 길을 걷는 마음, 될 대로 되라며 아무렇게나 신경 쓰며 결과는 좋게 나오길 바라는 마음. 그런 무책임한 마음을 갖고 행동하는데 어떻게 삶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행복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방법은 단순하다. 결정적인 순간 앞에서 선택을 쓸데없이 미루지 않아야 한다. 문제의 중요도에 따라 어느 정도 고민하는 시간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쓸데없이 길어질 필요는 없다. 특히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아주 명백하게 나와있음에도, 그 선택을 하고 나서 스스로 겪을 감정적인 고통이 두려워 미루는 건 최악의 행동이다. 선택으로 느낄 고통이 두려워서 평소에 나쁘게만 보던 것을 좋게 보려고 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선택을 미룬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물론 당장 자신이 내린 선택으로 인해 힘들 순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당신이 얻는 것 또한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가능성'이다. 고통을 감내한 후, 당신은 그때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연인과 이별을 하면 당장은 힘들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시간에 반비례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이별로 인한 슬픔은 줄어들며, 당신은 다른 사람과 또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전에 만났던 사람과 만나면서 느꼈던 공허함과 숱한 정신승리가 사실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문제였음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물론 반대일수도 있다).



억지로 쌓아 올린 자존감은, 그만큼 작은 바람에도 쉽게 무너진다. 마주한 선택에 두려워할지언정, 결코 물러서거나 발을 빼는 행동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앞으로 나아갈 줄 아는 사람이다. 당신의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들은 모두 당신이 내려야 하는 동시에,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곧 내려야 할 선택의 결과로 인해 너무나 힘들 것 같다면 이것만큼은 기억하길 바란다. 미룬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미뤘을 때 더 큰 아픔이 닥칠 수도 있다는 것. 지금까지도 당신은 수많은 아픔과 시련들을 겪었지만, 결국 그것들조차 시간이 흘러 잘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지금 이 경험 또한 다르지 않을 거란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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