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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11. 2023

'네가' 불편한 게, '내가' 불편한 건 아니잖아


하루에도 우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눈다. 똑같은 대화라고 해도 어떤 대화에서 우리는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지만, 또 다른 대화에선 스트레스를 받거나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싶은 기분을 느낀다. 당신은 요즘 어떤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가. 오늘은 "진정한 대화를 위해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대화가 중요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주변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떠올려보라. 자기 자신을 포함해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지금껏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과 '대화'를 한다기보단 '설득'을 한다는 것이다. 설득과 대화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설득은 타인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대화에 비해서 일방적인 면이 존재하며, 설득하는 사람이 상대에 비해 스스로가 얼마나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요즘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갑질하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라. 소위 '갑질'이라는 행위에 대해, 우리는 막연하게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외형적인 모습에서 위압감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저지를 것이라고 떠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착각에 불과하다. 부유한 사람만이 갑질을 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갑질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되려 정반대인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타인에 비해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그와 같은 약간의 우위로 상대를 얕잡아보거나 하대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떠올려보라!






지금까지 내 경험상 갑질이나 설득이 몸에 밴 사람들은 '강약약강'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신이 가진 능력보다 낮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겐 드세고 강하게 행동하는 반면,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겐 아부하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상대의 험담을 하곤 했다. 요즘 많이 언급되는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은 강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표본인 것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대화를 하기보단 상대를 설득시키려 들거나,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 드는 사람들은 많았다. 하지만 요즘 그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가장 무서운 점은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오히려 '나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지'라고 생각하며 타인에게 무례한 언행을 계속해서 일삼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상대 또한 따라야 한다'는 그릇된 신념에 근거한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주장엔 근거가 분명하고 거침이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근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오로지 그들 자신 속에 뿌리내린 근거에서 비롯된 말에 불과하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의 말에 순순히 따를 필요가 없는 가장 큰 이유이며, 그들이 당당하게 타인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수 없는 근거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기 위해 가장 마음에 새겨할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이, 상대에게는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말이다. 내가 누군가를 위하는 방식이 상대에겐 아닐 수 있는 것. 나의 사랑이 상대에겐 사랑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절대 상대방에게 무례한 언행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의 솔직함이 상대에겐 무례함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하는 언행이 상대에게 불쾌할 수도 있다면, 상대방에겐 어떤 말도 못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 말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옳다고 생각하는 절반의 이유(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의 성향'에 달려 있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머지 절반의 이유(말을 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성향'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만약 스스로 생각했을 때 자신이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거나 예민한 편에 속한다면, 자신에겐 가벼운 말과 행동이 상대에겐 상처로 느껴지거나 상대의 입을 다물게 만들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라면 타인과 대화를 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표현들을 좀 더 순화해서 사용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잠깐 참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반대되는 성향인 사람들을 대할 땐 이런 부분에 주의하며 행동해야 비로소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다르게 상대가 불쾌해하더라도 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이 지나치게 예민하거나, 강요나 설득이 몸에 밴 사람들을 대할 때이다. 물론 이런 유형의 사람들과 매번 부딪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 지나친 예민함과 쓸데없는 강요를 매번 받아내는 것 또한 힘든 일이다.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그들의 예민함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자신이 불편하지 않으면 타인 또한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의견을 반박할 때 그들은 당연히 불편해하거나 기분 나쁜 티를 확연히 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미성숙하다는 걸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진정으로 좋은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속상함을 드러내기 전 당신이 지금껏 보여준 인내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먼저 표현했을 테니까 말이다.






나와 타인이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의 입장을 솔직하게 말하고 들어주는 것. 이러한 과정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로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솔직하게 말하라고 하면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 그건 아니지"라고 끊어버리거나, 말이 끝나자마자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데"라며 곧바로 지적하는 걸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결국 대화를 가장한 설득에 불과하다.



스스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 상대방 또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자기 자신이 설득에 익숙하다면 누구를 만나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는 건 힘들어진다. 반대로 솔직하게 터놓고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계속 고집을 부리거나 솔직하게 말하지 않아도 대화는 불가능해진다.



결국 현재 당신의 주변에 제대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건, 당신 또는 주변 사람들이 아직 대화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는 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당신의 곁에 '좋은 사람들'을 더욱 많이 둘 수 있다. 특출 나지도 않는 능력을 뽐내며 타인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을 자신의 능력으로 이끌어주며 함께 나아가려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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