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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19. 2023

'구독자 1,000명'이 되어도 덤덤했던 이유


목표를 이룬다는 건 기쁜 일이다. 사람마다 각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살아가겠지만, 내게 있어 이번달은 꽤나 의미가 있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였던 브런치 구독자 1,000명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올해 3월 초만 해도 약 700분 정도가 내 글을 구독하고 계셨는데, 어느새 300분이 더 늘어나버렸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예상했던 것보다 기분이 아주 좋진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오늘은 "먼 훗날 꿈꾸는 모습에 한 발짝 다가간다는 것"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2021년 12월 말에 친한 지인들과 카라반에서 1박 2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맛있게 고기를 먹고 나서 모닥불 앞에 앉아 불을 쬐며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러다 어떻게, 누구의 입에서 나온 건지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10년 후'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안정감이라곤 없는 사람이었다. 30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고 있었으며, 4개월짜리 기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 지조차 막막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도 계속해서 글은 쓰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글은 아니었고 블로그에 카페나 맛집을 다녀온 후기나 평소 드는 생각을 적곤 했다.



그래서 말을 했다. "나는 10년 후엔 제주도에 가 있을 거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바다가 보이는데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집 안에서도 바다를 볼 수 있어. 파도가 치는 걸 보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고 있지. 종종 지인들이 놀러 오면 맛있는 저녁을 해주거나 하루 정도 묵고 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을 거야"


   




그 말을 한 뒤로 이제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그동안 내겐 참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먼저 2022년이 시작되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로부터 정규직 제의를 받게 되었다. 나보다 훨씬 어리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럼에도 내가 그러한 제안을 받게 된 이유에 대해 나름 추측을 해보자면, 출근까지 1시간 정도 걸렸음에도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는 것.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비해 나이는 많았지만 힘든 일들을 마다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 등이 아닐까 싶다.  



경제적으로 좀 더 안정되자, 이젠 다른 것들도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항상 고민만 하던 것을 해보기로 했다.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살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독립을 한 것이었다. 퇴근 후 저녁시간에 미리 방을 봐둔 뒤 점심시간에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나서, 퇴근 후엔 방을 몇 군데 보고 집으로 향했다. 부모님께는 늦게 집에 들어오는 이유에 대해 약속이 있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맘에 드는 방을 보고 바로 가계약을 한 뒤, 그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사실을 말씀드렸다. 거의 통보와 다름없었다. 물론 내 발로 내가 나가겠다는데, 부모님이 나를 말릴 이유는 없었다. 작은 원룸이었지만 그곳에서 처음으로 누워서 잠을 청했던 날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좀 더 많은 것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2022년 4월 경, 처음으로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다.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자신이 쓴 글이 통과되어야 비로소 작가로 활동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그건 내게 어렵진 않았다. 왜냐고? 이미 1년이 넘게 블로그에 써둔 글들이 수십 개는 족히 넘었기 때문이었다.



운 좋게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글쓰기 생활이 시작되었다. 타이밍이 참 좋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게, 마침 회사 일도 바쁘지 않은 시기여서 글을 쓸 시간과 에너지는 넘쳐나고 있었다. 적게는 하루에 1편, 많게는 하루에 3편을 쓴 적도 더러 있었다. 따로 홍보를 할 매체도, 구독을 부탁할 사람도 없었지만 글을 쓰는 게 마냥 좋아서 매일같이 글을 쓰자 글을 읽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만 갔다.



하지만 매일같이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면서 새로운 글을 쓴다는 건 쉬운 게 아니었다. 뭔가 일상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문득 몇 년 전에 했던 직장인모임이 떠올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각자의 일상과 삶을 공유한다는 것이 즐거웠었기에, 새로운 모임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모임에서, 나는 또다시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다소 지루했던 일상에 새로운 사람들의 만남이 추가되자, 새로운 아이디어들 또한 흘러넘쳤다. 더군다나 1주일에 하루를 '책 읽는 시간'으로 채웠다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비록 1시간 정도였지만, 혼자서 어영부영 독서를 하는 것보다 훨씬 집중이 되었다. 거기다 사람들과 각자 읽었던 책에 대해 서로 생각을 나눈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그러다 보니 좋은 사람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따로 카페를 가기도 하고,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으며, 때로는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독서모임은 글쓰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똑같은 현상에 대해 나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을 보며 '그럴 수도 있지'라는 사고가 더욱 넓어지는 동시에, 오히려 나의 주관 또한 뚜렷해지고 있었다. 다르지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떤 일에 대해 전보다 더욱 깊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들이 글 속에 담기면서 공감해 주는 분들도 점점 더 늘어갔으며, 구독자 수 또한 계속해서 늘어갔다.






그렇게 2022년이 마무리되고, 2023년이 되었다. 나는 더 넓은 집으로 또다시 이사를 갔다. 1년에만 두 번 이사를 간 셈이었다. 또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행복한 연애도 하고 있다. 미칠 듯이 설레고 얼굴만 봐도 좋은 연애가 아닌, 서로의 다른 부분들을 이해해 주고 대화가 잘 통하는 안정감 있는 연애를 하는 중이다. 예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 우선이 되었다.



예전에 비해 글을 쓰는 시간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매일 글을 쓰기 위해 하루 중 일부를 투자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걸 하기 위해 그 사람과의 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내 일상의 다른 시간을 줄여서 원하는 것과 그 사람과의 시간 모두를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출근 후 덜 바쁜 시간과 점심시간에 미리 글을 쓸 주제를 고민한 뒤, 메모장에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구성도 미리 짜둔다. 퇴근 후엔 집에 도착할 때까지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집에 도착하면 조금만 쉬고 나서 바로 글을 쓴다. 집안일은 미뤄두면 점점 더 쌓이기에 보일 때마다 해버린 뒤, 자기 전 최소 30분 이상은 여자친구와 전화를 하고 나서 눈을 붙인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10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구독자 1,000명을 넘을 수 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올해 초에 '구독자 1,000명'이라는 목표를 세울 때만 해도 달성하면 너무나 기쁠 것이라 상상했지만, 막상 되고 나니 의외로 마음은 덤덤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이것보다 해낼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이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구독자 1,000명이 기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최근 2년간 나의 삶이, 지난 몇십 년보다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면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가 얼마나 인생을 다르게 만드는지를 알게 되었다.

명확하게 하고 싶은 것이 생기자, 하루가 저절로 바빠졌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사는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으며,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과 가까워졌다. 덩달아 부정적인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게 되거나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현재 당신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을 이룬다는 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건, '당신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다. 원하는 걸 얻으면 물론 행복한 감정이 들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행복이 단지 목표 달성을 할 때만 느껴진다면, 당신은 영원히 과정을 즐기지 못할 것이다. 단지 '결승선 통과'만을 목표로 한 채, 그것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계절이 바뀔 때 느껴지는 온도 차이, 주말 아침의 여유, 청량한 맑은 하늘, 흐드러지게 핀 벚꽃. 성공과 더불어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을 빛나게 해주는 각기 다른 요소들인 것이다.



내게 구독자 1,000명보다 더욱 의미 있는 건, 그동안 브런치에 써내려 온 '341편의 글'이다. 구독자 수는 지금보다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내가 쓴 글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수백 편의 글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라. 모든 것이 그러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건 분명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랑이 언젠가 줄어들거나 사라졌을 때, 그 존재 또한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당장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힘을 쏟는다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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