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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Oct 29. 2023

왜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과 만나라고 하는 걸까?


바로 어제,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사람과 만나고 있는 사람의 얘기를 들었다. 그들은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 사랑에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도 더러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이란, 단순히 형성된 관계 유지를 위해서라거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상대에게 잘해주는 게 아니라, 상대를 사랑하기에 그가 원하는 것을 먼저 배려해 주는 과정을 노력이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이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면, 굳이 자신이 원하는 걸 강하게 요구하지 않더라도 상대 또한 나를 배려하게 된다.



앞서 내가 이야기를 들은 그분 또한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었다. 나 또한 그분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그런 사람이라면 당연히 결혼생각이 들 수밖에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연애할 사람과 결혼할 사람과의 가장 큰 차이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꼽는 이들이 많다. 나 또한 이에 공감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이 2가지가 왜 결혼을 할 때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단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실 편안함과 안정감은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런 반찬도 없이 매일 맨밥만 먹는다고 상상해 보라. 단 하루만 지나도 밥 먹는 시간이 괴로워질 것이다. 매일같이 출근하는 회사가 지겨운 이유도, 부모님과 가장 친한 친구들도 내 곁에 있고 연락이 오고 가는 게 당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쉽사리 퇴사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이 '편안함과 안정감' 때문이다. 자극적인 음식들도 그렇다. 첫 입은 항상 맛있지만, 늘 그렇듯 그런 음식을 먹고 나면 다음날 속이 편치 않음을 느낀다. 언제까지고 평생 곁에 있을 것만 같던 부모님의 부재로 인한 공허함을 느껴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 일인지 알 것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옛말처럼, 편안함과 안정감은 곁에 있을 땐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 그것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노력을 하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노력을 하는지에 따라, 관계는 크게 달라진다. 단지 '내가 너의 남자친구(여자친구)니까', '우리가 지금 사귀고 있으니까'라는 식의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언젠가 한계를 맞이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 뒤엔 자신이 그것을 계속해야만 하는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유지는 할 수 있어도 처음과는 달리 전혀 즐겁지 않을 건 뻔하다. 기계처럼 상대를 위한 행동만을 반복하며 그저 관계 유지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에너지를 쓰는 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나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한다고 가정해 보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해 달랐나'라거나 더 해달라는 식으로 행동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한 상대의 마음에 고마워하며 자신 또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관찰하고, 비록 자신이 그것을 잘하진 못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서툴지만 열심히 노력해보려고 할 것이다. 차가운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지만,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자 나그네가 저절로 외투를 벗었던 것처럼 사람의 본심을 바꾸게 하는 건 단 하나, '상대를 위한 진심이 담긴 행동' 뿐이다.






나는 만났을 때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 가진 공통점은 바로 '무언가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다는 것'이다. 지나침은 좋은 것 또한 나쁘게 만든다. 적당한 사랑은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지만, 사랑이 지나치면 집착이나 구속이 된다. 적당한 감성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감성이 지나치면 소통을 힘들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더욱 외롭게 만든다. 적당한 예민함은 통찰력을 높여주지만 지나친 예민함은 주변 사람 모두를 힘들게 만든다.



요즘 들어 점점 결혼 후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대부분은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거나 '결혼 전엔 그러지 않다가 결혼 후에 변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결혼 전 만나면서도 분명히 상대의 말과 행동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갑자기?' '굳이 이런 걸로?' '이게 그렇게나 화낼만한 일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깊게 하지 않고, 그럴 수 있겠거니라며 쉽게 넘어가버린다. 그런 후 이혼을 하고 나서야 "그때부터 낌새가 이상했어!"라며 뒤늦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좀 더 빨리 눈치챌걸'이라며 후회하는 것이다.






우리는 본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귀고 있으니까' 노력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복해 보이려고 하지 말고, 정말로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굴 만나더라도 편안함과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모든 면에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상대에게 진심으로 잘해주어도 상대가 그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다름없다. 잘해준다고, 그 사람의 상황이 나아진다고 해서 사람 자체의 본성이 달라지진 않는다. 사람이 바뀌기 위해 주변 사람과 상황의 영향이 매우 중요한 건 맞지만, 결국 자신이 바뀔지 말지 선택하는 건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 상대방이 그대로라서 해서, 더 잘해주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거나 책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힘든 연애를 한 후, 더 좋은 사람을 만난 사람이 한 말이 있다. "너한테 맞춰주던 걸 다른 사람한테 맞춰보니까 다른 사람이 더 수월한 것 같아"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몰랐던 건 과연 당신일까, 아니면 그 사람일까. 헤어진 후 느끼는 감정이 '할만큼 다 했어'라는 후련함일까, '받은 것만큼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일까. 스스로 깊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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