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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Dec 06. 2023

우리는 '판단 상실의 시대'에 서 있다


온 세상에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다. 우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한다. 다만 판단을 잘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데서 기인한다. 예전엔 정보가 없다 보니 '몰라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면,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다 보니 '무엇이 정확한지를 몰라서'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많은 이들이 좋다고 하는 것들을, 아무런 근거 없이 무작정 믿거나 그것이 좋다고 생각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가 '좋다'는 말을 들으면 그것이 왜 좋은지, 자신에게도 좋은 건지 고민하지 않은 채 일단 좋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이고 좋지 못한 기사를 접하게 되면 '왜' 그것이 나쁜 것인지에 대해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드물다. 단지 그것을 좋지 않게 보는 이유는 딱 하나, "남들도 나쁘다고 하니까"가 전부인 것이다.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순 없다. 어떤 순간에서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과거에 좋은 판단을 많이 한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데 실수하거나 하지 못하는 것'과 '애초부터 하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누군가의 말에 쉽게 휘둘리는 사람들을 대하면서 왜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내 나름대로 그들이 가진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상황을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사실 생각이 많아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그러한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도 마주해야만 할 때가 있다. 자격증 공부를 그만두고 회사를 들어갈 것인지, 지금 잘 돼 가고 있는 사람과 사귈 것인지, 현재 거주 중인 곳을 떠나 이직을 할 것인지. 회피하고 싶어도 반드시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앞에 놓였을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겨워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무언가를 쌓아가게 된다. 바로 '경험' 말이다. 처음 겪는 이별은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다. 두 번째 이별도 여전히 슬프지만, 전에 비해서는 좀 더 빠르게 그러한 슬픔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게 된다. 전에 겪은 비슷한 일로 인해 '생각이 많아지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과 그로 인해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 생전 처음 마주한 것들은 걸어왔던 길을 한 발자국 뒷걸음치게 만들지만, 그로 인해 다음번 비슷한 일을 겪을 때는 오히려 앞으로 한 걸음을 더 걸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생각이 많아지는 상황 자체를 싫어하고 회피하면 할수록, 일상은 점점 굳어지게 된다. 만나던 사람, 하던 일, 매일 가던 곳들. 처음엔 그런 것들이 편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만든 틀은 되려 자신을 틀 안에 가둬버리게 된다. '맘만 먹으면 나갈 수 있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틀 밖으로 한 발을 놓는 순간, 스스로 화들짝 놀라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그어둔 선 안에서는 누구보다 자신감 넘치고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굴지만, 겨우 한 발짝만 선을 넘게 되면 순식간에 움츠러들게 되는 것이다.






다쳐본 적이 없는 사람은 더욱더 다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한 번도 다쳐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병원을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선 그러한 고통들이 점점 더 부풀려지게 된다.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다칠 것 같은 상황이 닥치면, 서둘러 그곳을 벗어나려 든다. 아파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픔을 견디는 방법도 모른다. '고통'이라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만이 커져서, 시간이 지날수록 아플 것 같은 상황이 생기면 몸을 피하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지게 된다.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본 적이 없는 사람은, 스스로 고민하고 내린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를 최악으로 상정하곤 한다. 그렇기에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부모님, 형제자매, 친한 친구, 연인에게 선뜻 선택을 미뤄버리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듣고 결과가 좋으면 '역시 믿길 잘했어'라고 생각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내가 좀 더 신경 쓸걸'이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그 모든 결과를 책임지는 건 조언하는 그들이 아니라 자기 자신인데도 말이다!



힘들더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당신이 그토록 힘겹게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판단의 결과가 최악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이 당신이 앞으로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가? 적어도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타인의 손에 이끌려 눈을 감고 빠르게 걷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불안한 모습으로 휘청거리며 걸어도, 멀리 보지 못해도 내 두 눈으로 내가 걷는 길을 똑똑히 바라보며 걷는다는 것. 걸어온 길이 많이 힘들더라도 후회는 남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판단력 상실의 시대에서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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