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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Dec 12. 2023

가장 '나답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과 같다


나는 평소 쉴 때 유튜브나 SNS를 보는 걸 좋아한다. 업로드된 글이나 영상들이 재밌기도 하고, 거기서 글 쓸 주제를 찾는 편이기도 하다. 다양한 영상과 글 중 요즘 들어 특히 자기 계발이나 동기부여와 관련된 자료들이 많이 보인다. 어떤 글은 공감이 되는 한편, 다른 글은 마음 깊게 와닿지 않기도 한다. 분명히 읽어보면 좋은 말임에도 '정말 그럴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의문이 들 때는 항상 같은 이유에서였다. 바로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나 감정에 대해 논할 때'라는 것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이미 그것을 해본 많은 이들이 칭찬일색이어도, 우리는 자신이 직접 해보지 않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것은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이 접했던 내용이지만, 최근 그 내용을 직접 경험하고 굉장히 공감했던 말이 하나 있다.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다.



과거에 내가 했던 연애나, 호감이 있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잘하지 못한 편이었다. 물론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굳이 보지 않아도 될 눈치를 더 보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과의 5년 간 연애도, 그 이후에도 나는 '나다운 모습'으로 누군가를 좋아하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모든 게 조금씩 달라졌다. 어쩌면 원래대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표현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현재 내가 나다운 연애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과거와 다른 사랑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는 처음부터 서로에게 끌린 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서로가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는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라면,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상대에게 편하게 내보일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건 상대 그 자체를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고 보여주려고 해도, 상대가 그것을 부정하거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면 어떨까. 더군다나 그 사람이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라면? 아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기보다, 상대가 원하는 사람으로 변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바꾼다는 것도 사랑의 한 형태이다. 그러나 상대가 바라는 '나의 모습'과, 내가 바라보는 '진짜 나'와의 괴리감이 너무나도 크다면 어떨까. 쉬는 날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등 한가로운 여유를 즐기는 사람과, 휴일엔 무조건 야외 활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 만났다고 상상해 보라. 가지고 있는 결이 너무나도 다르면 아무리 좋아하는 마음이 커도, 서로를 위해 정말 많이 노력하더라도 흡사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며 행복한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보기 위해 어느 정도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면, 다음으로 해야 할 것은 '타협'과 '내려놓기'이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결국 다른 사람이다. 나와 상대방 모두가 카페 가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카페에서 하는 것들을 그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큰 틀이 비슷하다고 해서 그 안에 속한 세부적인 것들까지 비슷할 거라고 혼자 결론을 내려선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과 타협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타협'이란 서로 이해할 수 있을만한 중간 지점을 대화를 통해 찾아가는 것이다. 성공적인 타협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말해선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협이 아닌, 설득 또는 강요이기 때문이다. 타협을 잘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도 경청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걸 상대가 수용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재빨리 파악하고 어느 정도까지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려놓기'가 필요하다. 똑같이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그래. 내가 원하는 걸 저 사람도 들어주는데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와, '진짜 해주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한 번 참아준다'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흔히 내려놓는다는 걸 포기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포기와는 다른 개념이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내려놓지 못하고 억지로 참거나 '한 번은 넘어가준다'는 식으로 생각하면, 언젠간 마음이 곪아 터지게 된다. '타협'과 '내려놓기'가 힘든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처음부터 서로가 가진 결이 너무 다르거나, 과거부터 현재까지 자기밖에 모르고 살아왔거나.






가장 나다운 사람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진, 연애는 항상 힘든 것이라 생각했다. 상대가 원하는 걸 맞춰주고 들어주는 것만이 사랑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맞춰갈 수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시작할 때부터 삐그덕거리던 관계를 하나씩 맞춰가고 그 과정을 '우리가 너무 사랑해서'라고 여기는 것보다, 애초에 크게 맞출 필요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훨씬 편하다. 10개 중 7~8개가 다른 사람과 만나 하나씩 맞춰가는 것보다, 2~3개 정도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차이가 나는 부분을 대화로 조율하는 게 서로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다.



너무 좋아하지만 자신과 너무나 다른 사람을 만나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을 향한 애정은 식기 마련이다. '왜 이렇게 하지?' '굳이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나?' 누구를 만나더라도 이런 의문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는데도 이러한 의문들이 줄어들기는커녕, 여전히 똑같거나 더 많아진다면 그러한 관계는 감히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다.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상대의 행동들에 보며 그것을 애써 이해하려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 칭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빨리 흘러간다는 걸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나다운 연애'를 하라는 건 결코 '이기적인 연애'를 하라는 말이 아니란 것이다. 상대의 색깔에 물들지 않은 채 당신의 색을 유지하는 것. 동시에 당신의 색뿐만 아니라 상대의 색 또한 '아름답다'라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 다운 연애', '당신 다운 삶'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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