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잘 유지하던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있다.크게 부푼 풍선의 한 곳을 바늘로 찌르면, 순식간에 바람이 빠지면서 너덜너덜하게 쪼그라든 풍선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마음속 한편에 애써 차곡차곡 눌러 담은 감정들이 아주 작은 일로 인해 구멍이 생길 때가 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라며 수도 없이 자신을 타일러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와르르 무너졌던 순간들이 오늘 하루 당신에게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순간이 있었음을 바라야 하는지, 없었길 바라야 하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평정심을 잃었을지언정 후련해진 기분과,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답답함이 싫으면서도 오늘도 일상 속 '나'를 유지했다는 뿌듯함. 그 어떤 하루를 보냈던, 당신이 무언가를 잃고 무언가를 얻었을 것이란 건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바라는'만큼' 사는 것, 바라는'대로' 사는 것
그토록 되고 싶었던 '이상적인 하루'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겐 어떤 형태일지 궁금하다. 방 하나가 돈다발로 가득 차서 침대가 아닌 돈에 누워 잠을 자는 모습일 수도, 꿈꾸던 이상형과 만나 지난 크리스마스에 단둘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행복하게 보내는 모습일 수도, 지긋지긋한 회사를 때려치우고서 이미 출근했어야 하는 시간에 바닷가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따뜻한 햇살 아래 일광욕을 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현재 내가 꿈꾸는 모습들조차, 무의식적인 한계를 그은 채로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라고. '이 정도의 삶을 내가 살 수 있을까'라며, 한계 그 이상을 꿈꾸는 것조차 멈추고 있진 않았던 걸까라고 말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이 바라는 그 한계에 도달하기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라고 말했다
어디든 머리만 대면 아침까지 잘 자는 내가, 새벽에 작게 끙끙 앓는 너의 소리에 눈이 떠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피곤하고 귀찮으면 내가 먹을 밥도 챙겨 먹지 않던 내가, 복통엔 누룽지가 최고라는 네 말에 새벽 3시에 슬리퍼를 신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다녀온다는 게 마냥 새롭게만 느껴진다.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이불을 돌돌 만 채로 멍한 눈으로 앉아있는 네게, 누룽지를 천천히 한 숟갈씩 떠먹인 후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잠이 든 걸 보고 나서야 마음이 차분해지는 건 왜일까. 어렸을 적 심하게 배탈이 났던 날, 본인도 졸린 눈을 한 채로 내가 잠이 들 때까지 크고 따뜻한 손으로 밤새 배를 어루만져주시던 부모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젠 괜찮다'라는 내 말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괜찮다'라며 잠들기 전까지 배를 만져주시던 부모님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