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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an 03. 2024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을 때, 쉽게 놓치는 '한 가지'


누군가와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서로 같은 곳을 보며 걸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직은 도달하기까지 너무나 멀지만, 바라보는 곳이 같은 사람을 만나야 힘든 길도 보다 쉽게 갈 수 있다는 말. 정말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말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의미가 하나 더 숨겨져 있다. 오늘은 "같은 곳을 보며 간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여기 한 연인이 있다. 두 사람은 오늘 평소 가기로 했던 산을 등반하기로 한다. 높고 험준하기로 유명한 산이지만, 이 둘은 이곳을 오르기 위해 그동안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열심히 산을 올라, 둘은 마침내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도달했다. 남자는 조금이라도 빨리 고지를 밟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여자는 어딘가 모르게 표정이 좋지 않다. 남자는 정상만을 바라보며 여자를 이끌지만, 여자는 앉은자리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조금만 쉬었다가 가자고 말한다. 남자는 무슨 소리냐며, 너도 빨리 정상에 오르고 싶지 않냐고 말한다. 그렇게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에, 그들은 정상에 오른다. 한 명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지만, 다른 한 명은 아예 표정이 없다. 그 이후 그들은 다시는 함께 산을 오르지 못했다.



비슷한 목표, 비슷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과연 그 둘은 함께 있을 때 행복할까? 다른 부분보다 비슷한 부분이 많으면 부딪힐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부딪힐 가능성이 적다고 해서 '부딪치지 않는다'는 말과 같진 않다. 번개에 맞아 사망하는 확률은 한없이 0에 가깝다지만, 매년 낙뢰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히려 잘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아주 작은 문제로 인해 쉽게 관계가 틀어져버리곤 한다.






까만 종이 위에 볼펜으로 점을 찍으면 어떻게 보일까. 아마 점이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반대로 하얀 종이에 점을 찍는다면? 훨씬 더 잘 보이게 된다. 서로가 비슷하고 잘 맞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사소한 문제로 멀어지는 것 또한 이와 같다. 애초부터 자신과는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겐 기대를 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실수를 하더라도 짜증이 좀 나겠지만, 그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실수를 하게 되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이와 비슷한 고민을 들으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뭐 어때! 걘 평소에 잘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해." 하지만 그 상황이 자신에게 일어나면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180도로 돌변하며 불같이 화낸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에게 '절대 해서는 안된다'라며 몇 번이고 강조했던 금단의 문장이 입에서 툭 나와버린다. "널 믿은 내가 바보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잖아!" 서운함은 누군가에 대한 신뢰에 비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수록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실망하는 동시에 그 사람을 사랑한다.






서로를 믿고 신뢰하고 사랑할수록, 우리는 그 사람의 마음이 자신과 같을 거라는 착각에 사로잡힌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니까 상대 또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나의 마음을 당연히 헤아릴 거라 생각한다. 내가 오른쪽을 보면, 상대도 오른쪽을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아침식사를 커피 한 잔과 토스트로 간단히 해결하는 걸 상대도 좋아할 거라 여긴다. 시답잖은 농담에도 웃어주는 상대를 보며, 자신이 정말로 유머러스하고 재치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현실은 어떨까. 내가 오른쪽을 본다고 상대 또한 그 순간에 오른쪽을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왼쪽을 보았다가 오른쪽을 돌아보았을 때, 그 모습을 보고 '아, 얘도 처음부터 나처럼 오른쪽을 보고 있었구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어쩌다 한번 커피와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하는 건 괜찮지만, 사실 상대는 좀 더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아침식사를 원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의 농담이 재밌어서가 아니라, 그 농담을 던지고 웃는 나의 모습이 귀여워서 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고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며 그곳을 바라보진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레 그 사람과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아도 바라보게 된다. 내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보는 곳을 자신도 덩달아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은 그곳을 보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그저 당신이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람이 아닌, 그곳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그곳을 바라본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곳을 보고 함께 가다 보면, 언젠간 당신이 자신을 쳐다봐줄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 때문에.



같은 곳을 보고 걸어가다 보면, 미처 서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정상에 눈이 멀어, 함께 가는 사람의 컨디션이 어떤지조차 모르고 그저 '정상에 오르는 것'에만 매달리다 보면 영영 그 사람과 산을 타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사랑은 같은 곳을 보고 걸어가는 것'이란 말 뒤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같은 곳을 보고 걸어가다, 이따금 상대가 어떤지도 살펴보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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