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주고받자고요

by Quat


30대 중반이 되면서부터 사람들을 대할 때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있다. 바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게 점점 귀찮아진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챙겨준다는 게 마냥 좋게 받아들여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군가의 관심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상대가 그러한 관심과 배려를 내게 건네며 상대 또한 받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면, 처음부터 정중히 거절하는 것이다. 내 경험상 나에게 무언가를 줄 때부터 부담이 느껴지는 사람과는 관계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줄 수 있을 만큼 주고도 더 주고 싶다는 건 오로지 자신의 입장이다.






무언가를 주는데 익숙한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준만큼 돌려받을 생각은 전혀 없어." 하지만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게 하나 있다. 그들이 준만큼 돌려받을 생각은 없지만, '어느 정도는 돌려받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은 그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니, 내가 이 정도 해줬으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냐?' 물론 당연한 말이다. 다만 그들이 무언가를 준 대상이, '그러한 사실을 당연하다고 인지하는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가진 걸 모두 내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 사랑한다고 해서 왜 모든 걸 맞춰줘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러한 두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해 보라. 한 명은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지만, 다른 한 명은 그 모든 것들을 당연하듯 받아들인다고 말이다. 과연 이러한 관계가 얼마나 오래 잘 유지될 수 있겠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가 어떤 것인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똑같은 사랑을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어떤 이는 단 몇 만 원의 선물에도 감동하지만, 또 다른 이는 몇 백만 원의 선물에도 '전에 만났던 사람은 더 좋은 걸 줬었는데'라며 실망한 기색을 내비칠지도 모른다. 꼭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신과 상대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가 다를수록, 관계는 자꾸만 틀어지고 어긋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좋아해도 관계가 틀어진다면, 서로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에 대해 재정립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관계라는 건 어디까지나 나와 상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또는 상대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한들, 오랫동안 좋은 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선 '나 또는 상대의 노력'이 아닌, '나와 상대가 함께 하는 노력'이 기본적인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상대가 생각하는 사랑'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서로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애초에 서로 대화가 잘 통해야 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서로가 무엇이 다르고 비슷한지 알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후회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주고받는 과정이 좋은 관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더 주고 싶어도 참을 줄 아는 것. 항상 아끼며 살아가다 조금은 더 표현해 보는 것. 이러한 노력들이 어우러져 비로소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사실 이런 태도보다 더욱 중요한 건, 바로 당신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냐는 것이다.



당신의 배려에 대해 감사하는 태도. 그에 대해 자신 또한 보답하려 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비록 그러한 사람의 수는 드물지언정, 그 단 한 명으로 인해 당신의 일상 또한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아무나 곁에 두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만을 곁에 두는 것.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겪는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한 번에 해소할, 가장 단순하고도 명확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