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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an 20. 2024

30대의 관계가, 20대보다 어려운 이유


당신은 누군가와 다툴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가? 30대 중반을 넘어서자, 이제는 누군가와 다투는 과정 자체가 지겹고 귀찮아졌다. 상대방과 어느 정도 기준의 차이가 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 또한 노력하지만, 애초에 가치관이 너무나 다른 사람과는 관계 자체를 맺지 않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기본적인 대화 외에 다른 얘기들은 나누지 않는다. 조금만 더 깊이 대화를 하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생기고, 그로 인해 또다시 다툴 게 뻔하니까.


     




개인적으로 사람은 '변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근본, 즉 뿌리내린 성향까지 바뀌기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타고나길 내향적인 사람이 시간이 흐르고 다양한 사건을 겪는다고 한들, 아예 외향적인 사람으로 바뀌진 않는다. 정확하게는 "전보다 사람을 대하는 게 편하고 좋아졌다"가 맞는 것이다. 나 또한 예나 지금이나 다투는 과정 자체를 귀찮아했다. 그러나 전과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예전만큼 나와 결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유지에 '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 땐 처음부터 '나와는 결이 다르다'라고 느낀 사람과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에 속으론 부정하면서도 앞에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이제 그만 얘기했으면'이란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는 와중에도, 꾹 참고 "맞아, 그렇지"라며 영혼 없는 공감을 건넸다. 그러나 그러한 대부분의 관계가 결국엔 '나만 놓으면 끝나는 관계'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동시에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보여주면 될 뿐이었다. 똑같은 '나'를 보고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말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었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러한 내용에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20대 분들보다 30대 이상이신 분들이 훨씬 더 많은 공감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수많은 30대들과 대화를 나누며, 인간관계에 대해 '스스로 느끼기에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0대보다 30대의 관계가 더 어려운 이유는 뭘까?






20대는 관계에 있어 자유롭다. 왜 자유로운 것일까? 그에 대한 내 대답은 '모르니까'이다. 정확하게는 어떤 사람이 자신과 잘 맞고 맞지 않는지에 대한 정보가 30대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사람들도 있지만, 살아온 시간과 비례해 쌓은 절대적인 경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20대는 두려우면서도 도전한다. '저 사람이 과연 나와 잘 맞을까'라는 걱정보단,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관계를 시작할 때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걱정이 앞섰던 관계들이, 예상보다 훨씬 더 좋게 발전하는 경우들이 많다.


 

반면 30대는 자유롭지 않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20대 시절에 비해 훨씬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처음부터 자신이 상처받을 것 같은 사람과는 관계 자체를 시작하지 않는다. 상처를 받을 일이 적다는 게 장점이긴 하지만, 때로는 그러한 정보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때도 많다.






사람을 많이 만날수록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경험들로부터 사람을 쉽게 판단하게 된다. 상처가 된 기억일수록 그러한 기준은 더욱 강해진다.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면 상대를 '그 사람'과 동일시한다. 그 행동이 자신에게 상처를 준 행동과 전혀 다른 행동임에도 말이다. 바람을 핀 상대가 좋아했던 음식을 다른 이성이 좋아한다 말하면, '너도 혹시...?'란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 내 눈앞에  있는 사람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걸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면서도, '혹시나'란 생각을 쉽게 지울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 인간관계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본인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관계를 자주 맺고 살아왔는지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는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단적인 예로 "연애 좀 많이 해봤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나이를 먹고도 제대로 된 연애를 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이 수없이 많은 연애를 했음에도 여전히 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생각한 이유는, 앞서 말한 "관계를 시작하는 자신만의 기준"이 너무나 뚜렷했다는 것. 힘들었던 관계를 정리하고 새롭게 관계를 시작할 때 전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크게 보면 이 2가지였다. 머릿속으론 '이런 사람과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런 사람과 다시 관계를 시작하고 상처받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인간관계라고 이것과 크게 다르겠는가.






많이 알고 지내는 것보다, 서로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을 곁에 두는 게 훨씬 중요하다. 비록 현재 상황은 별로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을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들을 곁에 두고 가까이 지내보라. 자주는 아니더라도 나는 그런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집에 갈 때면 알 수 없는 여운이 내 안에 남는 게 느껴지곤 한다. 반대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있지만 불만이 많고 매사 부정적인 말들을 자주 내뱉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과 만나고 집에 오면 아무리 좋은 곳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이상하리만큼 기운이 빠지곤 했다. 정말로 당신이 만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면, 만남 후에도 기분 좋은 여운이 남을 것이다.



다른 글에서도 여러 번 말했지만, 단 한 명의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그전에 수십 명의 별로인 사람들을 만날 각오를 해야 한다. 세상엔 '좋은 사람인 척' 가면을 쓰고 행동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걸 당신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선, 그만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 수업료란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대화를 하면서 상처받을 용기를 갖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당신 또한 '좋은 사람인 척'하는 가면을 벗을 준비를 해야 한다. '진정한 나'를 어떤 누구에게라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게 진짜 나야'라며 기본적인 예의 없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당연히 용납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떠한가. 여태 당신이 호감을 느꼈던 기준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고 있진 않았는가. 당신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만날 사람들과 똑같을 거란 생각은 잠시 내려둬 보라. 지금껏 당신이 매력적이라 느꼈던 사람보다 그저 평범해 보였던 사람들이, 어쩌면 당신이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좋은 감정들을 가져다줄지도 모를 일이다. "나 정도면 괜찮지"라며 어설픈 자존감을 높일 바엔, 차라리 이리저리 부딪혀보고 정말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파악할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당장 다음 달이라도 당신이 정말로 좋은 사람과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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