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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r 27. 2024

고통 뒤에 찾아올 행복을 쉽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이 말에 얼마나 공감하는 편인가? 잘 생각해 보면 인생에서 대부분 느끼는 큰 행복들은 그만한 희생의 값을 치른 후 느낄 수 있다. 밤을 새우고 난 후 지친 상태에서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잠에 드는 것,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멋진 휴양지에 도착해 풍경을 만끽하는 것, 다이어트 후 목표했던 몸무게를 달성한 뒤 가장 좋아하는 음식 한 입. 아마 한 번이라도 이런 감정을 느껴본 사람은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복을 느끼기 전에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내려놓는 것처럼 보인다. 온갖 고통은 고통대로 겪고, 결국 그 끝에 도달하기 전 발걸음을 멈춘 뒤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매번 힘들어하는 사람과 그것을 견디는 사람의 차이란 무엇일까.






오늘 다니던 회사에 마지막 출근을 했다. 사실 퇴사 얘기는 이미 몇 달 전에 꺼냈지만, 시기상 회사가 많이 바빴던 터라 어느 정도는 마무리를 짓고 나가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전 직장상사가 하루아침에 일을 그만둔 후 반강제로 내 직무는 바뀌게 되었다. 성향이나 적성에도 잘 맞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이니까'란 생각으로 하다 보니,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꽤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퇴사를 결심하고 처음으로 회사에 이야기를 전달한 후부터 약 3개월 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만나고 있는 사람과 결혼에 대한 대화를 한 후로 양가 부모님을 찾아뵙기도 하고, 계약과 관련해 출판사와 연락을 하며 원고를 수정했으며, 새 차를 구매하기 위해 차량을 고르고 견적을 내서 딜러와도 연락을 지속했다. 출근 후부터 퇴근하기 전까진 평소 하던 일과 더불어 후임자를 위한 인수인계를 준비했고, 퇴근하고 나서도 일주일에 2~3편의 글을 썼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다양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다 보니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점점 더 잦아졌다.






그리고 오늘, 퇴사를 하게 되면서 그 모든 것들이 대부분 마무리가 되었다. 회사에서도 금전적인 보상과 더불어 훈훈하게 끝을 맺었고, 퇴근 후 새 차를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수정 요청을 받은 원고는 예정보다 훨씬 빨리 마무리한 후 계약까지 완료했으며, 틈틈이 이력서를 넣다 보니 면접을 보기로 한 회사들도 몇 군데가 있다. 여전히 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몇 달 전에 비해 굉장히 나아진 상태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 당시를 떠올려보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잘할 수 있었을까. 어쨌거나 이젠 복잡했던 상황들이 대부분 풀렸다는 것. 그로 인해 지금 이 순간 마음 편하게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그것이다.






안도감과 행복에 젖은 채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분명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별 탈 없이 잘 보낼 수 있었던 2가지 이유가 존재했음을 알게 되었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 중에선 현재 자신이 힘든 이유를 그저 '남의 탓'으로만 돌리는데 급급한 이들도 있다. '나는 이만큼 노력했는데' '나는 잘했는데'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의 능력 부재와 이해심 부족 등을 불평하거나 원망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러한 사고방식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통은 자신이 그것을 겪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낄 때, 전보다 훨씬 더 크게 와닿는다. 치과에 가서 충치를 치료할 때도 '내가 양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치과보다 여기가 더 아프게 하는 거 같은데'라는 건 전혀 다르다. 전자와 후자 모두 느껴지는 고통은 동일하지만 전자는 자신에게 원인이 있음을 인정했기에 그것을 견딜만한 명분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 하지만 후자는 고통을 견딜 명분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치료를 받는 내내 훨씬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결국 남 탓을 쉽게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고통을 견디는데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힘든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고통을 나눌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철같이 단단한 사람도, 지속적인 고통을 겪다 보면 어딘가 조금씩 금이 가기 마련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힘들 때 자신을 보호하고 아껴줄 사람을 찾게 된다. 상대의 입장에선 별 것 아닌 칭찬 한 마디가,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를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에 쓸데없는 인맥을 정리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제 한번 보자', '밥 한 번 먹자' 등 양쪽 그 누구도 먼저 약속을 잡지 않는 관계가 자신에게 얼마나 있는지 떠올려보라. 표면적인 공감과 리액션만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공허함은 절대 충족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아주 찰나의 순간에만 외로움을 달래줄 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전보다 더한 외로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점점 더 그런 관계를 만들고 SNS에 광적으로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수는 적을지 몰라도, 힘든 순간 그런 사람의 존재는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나 또한 그랬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왜 내가 이걸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 때도, 퇴근 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 순간을 견뎌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내게 좋은 소식이 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는 사람들을 보며, 앞으로 그들과 더 좋은 것들을 함께 즐기고 싶다는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와 같은 긍정적인 상상 또한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도 또 어떤 힘든 순간들이 닥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확신할 수 있다. 어떤 문제를 겪더라도 '내게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처럼 극복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34살이라는 나이에 혼자였고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모아둔 돈도 거의 없는 계약직 아르바이트생이었다. 그리고 지금,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정규직으로 2년이 넘게 일을 했고, 취미로 시작한 글쓰기에서 어엿한 작가가 되기 직전이며,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이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이 아니라는 것인가.



쓸데없는 자의식 과잉을 자존감으로 착각해선 안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것이다. 결국 현재 자신이 불행하고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오로지 스스로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 삶을 바꾸려고 들지 말고 스스로 자신이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더 나은 삶, 그토록 원하던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내가 겪어온 좋은 변화들이 일어나길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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