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한 번도 제주도를 가보지 못했을 때였다. 이미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제주도 관련 얘기가 나오면 저마다 한 마디씩 하곤 했었다. 흥미로운 건 저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가 조금씩 달랐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한라산을 그저 그런 곳이라 말하는 반면, 어떤 사람에겐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장소로 기억되고 있었다. 나 역시도 유독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이처럼 똑같은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본인만의 취향과 그 당시 상황에 따라, 속에 남아있는 여운의 양과 유지되는 시간은 달랐다.
여운이 남는다고 해서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도리어 강렬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경험도 있었다. 또한 별생각 없이 시작했다가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기억에 남은 적도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 부럽고 행복해 보이는 상황이라고 해도 내막을 들여다보면 마냥 좋다고 할 수 없는 이들도 꽤 많았다.
솔로였을 때,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한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의 답변은 저마다 달랐다. 보통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엄청나게 다퉈서 힘들다고 말한 이들도 많았다. 그때만 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서로 좋아해서 만나는데 왜 그렇게 다투는 걸까.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은 꾸준히 연을 이어나가는 편이었다.
이제는 조금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꼭 '좋음'과 '좋음'이 만나 '더 큰 행복'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다투고 부딪히며 자신의 모나고 툭 튀어나온 부분을 깎아내고,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상대의 장점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존재한다는 걸 말이다.
다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행복하기 위해선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한다.자신을 굽히기 싫어 상대에게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기준을 낮출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 오직 상대에게 '네가 문제야'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괜찮은 사람은 없었다. 또한 상대가 자신의 기준을 따라주었을 때 적어도 감사의 표시는 제대로 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조차 '진작 이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아'라는 식으로 또다시 자신의 감정만을 드러낸다면 무엇을 하든 끝은 뻔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무엇을 하든 상황이 꼭 좋게만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결과가 좋지 않거나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울 때도 있을 것이다. 원래 다니고 있던 회사가 별로여서 이직을 했지만, 되려 이직한 회사가 전 직장보다 더 최악일 수도 있다. 썸을 타던 이성과 사귀었지만 그때 몰랐던 단점들이 보이거나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우리는 고민에 빠진다. '차라리 지금 그만두면 덜 고통스러울 거야' 물론 그 선택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만두기 전,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지금 당신이 힘든 이유가 과연 현재의 이 사건 때문인 건지, 아니면 당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딱 그만큼인지 말이다. 도저히 회사에서 버틸 수 없다면 직장을 그만둬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직장을 그만두는 게 당연해진다면 매번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직을 할 것인가?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와 부딪히는 게 힘들어 이별한다면, 애초에 부딪힐 게 적은 사람을 만나면 되지 않은가?
힘들 때마다 매번 같은 방법을 사용해 보고 안되면 그만둔다는 건, 당신이 전보다 더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당신은 그렇지 않다고, 나도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 또한 최근까지도 그런 마음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때로는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던 걸 과감히 내려놓거나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누군가와 더 깊어지기 위해서든, 일에 있어서 더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서든 무언가를 전보다 더욱 나아지기 만들고 싶다면 과감히 '부딪힐 수 있어야' 한다. 상대방과도, 내가 몰랐던 지식과 정보와도, 부모님과도, 때로는 나 자신과도 부딪힐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마음가짐으로는 대부분 '그 정도의 결과'만 얻게 될 수밖에 없다.두려움 그 자체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두려워도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남 탓'이 아닌 모든 건 '나의 결정'이라는 책임감. 이 2가지를 갖추게 된다면 당신은 무엇에 도전하든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