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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May 26. 2022

게으름뱅이가 1일 1글쓰기를 할 수 있는 이유


나는 게으르다. 가만히 누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웹툰을 보고, 좋아하는 스포츠 기사를 보면서 하루 종일 뒹굴거릴 수 있다. 예전에 한창 집에 있는 걸 좋아할 때는 3일 동안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적도 있었다.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간엔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잤다. 지금도 일요일은 '집에서 쉬는 날'로 정해놓고 웬만한 일이 아니면 약속을 잡지 않고 있다.



나는 부지런하다. 살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지각한 적은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뿐만 아니라, 예전 회사에서도 결근은 한 번도 없었고 지각 또한 거의 한 적이 없다. 지인들과 만날 때도 웬만하면 약속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서두르는 편이다. 재작년에 시작했던 블로그도 최소 1일 1포스팅을 했고, 많을 땐 1일 3포스팅을 한 적도 꽤 있었다. 퇴사 후 작년 여름 이후부터 '글 쓰는 삶'을 목표로 정했고, 현재는 재직 중인 회사에서 퇴근한 뒤에 브런치에 매일 한 편의 글을 쓰고 있다.






게으른 동시에 부지런한 나. 얼핏 들어도 모순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둘 중 어떤 모습이 진정한 '나'인 것일까? 유명한 개그우먼인 장도연 씨는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사실 자신은 매우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로 낯을 가리냐는 다른 출연진의 물음에, 버스를 타서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자기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고 '비켜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해서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쳤다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망가지는 모습을 서슴없이 보여준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면 놀라운 고백이었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실례하겠습니다'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 정도로 내향적인 사람과, 다양한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건 놀라운 사실이다. 하지만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 그리 놀랍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들 주변엔 모순되는 점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한다. 엄청난 식욕을 갖고 있는데도 몸이 좋은 사람, 스스로 '아싸'라고 말하지만 많은 인맥을 가진 사람, 무뚝뚝하고 화를 자주 내지만 자기 사람에겐 다정한 사람. 이 글에서 일일이 다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반대되는 특성을 함께 가진 사람들이 이 세상엔 아주 많이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이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모르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가짜 모습인 걸까?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다. 누군가를 관찰해 그 사람의 모습을 종이에 그린다고 해보자. 종이에 그려진 그 사람이 실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려진 종이엔 관찰한 시점에서 본 사람의 단면만이 나타난다. 앞모습이나 옆모습, 뒷모습 등 그 사람의 단편적인 정보만을 그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오로지 한 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각도와 위치에 따라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것은 단지 외형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서 드러나는 모습 또한 천차만별이다. 누군가의 밝게 웃는 모습만으로 그 사람이 항상 밝고 쾌활한 성격을 지녔다고 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거친 말을 했다고 해서 '저 사람은 질이 좋지 않구나'라고 여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해당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평소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지도 모른 채 누군가의 단편적인 모습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고 바보 같은 행동이다.






타인과의 관계, 컨디션, 업무의 진행상황, 상대방의 태도 등 다양한 원인들로 인해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기도 한다. 무언가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다. 학창 시절 내내 영어 공부를 했음에도 성인이 된 후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것은 우리가 하고 싶어서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단지 '필요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투자한 시간에 비해 영어 실력이 썩 좋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인간이 가진 타고난 본성은 정해져 있고,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들이 부가적으로 나오는 것이다. 마치 멀리서 나무를 보면 굵은 나무기둥을 따라 여러 나뭇가지가 뻗어있는 모습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본성만이 진정한 나이며, 부가적인 모습들은 내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그건 아니다.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들이 나오는 건 맞지만, 그 모습조차 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타고난 본성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에 처해도 저마다 차별화된 행동들을 보이기 때문이다. 나무기둥과 나뭇가지, 나뭇잎이라는 명칭은 각자 있지만 그것들이 모두 '나무'라는 틀 안에 포함된 것처럼, 인간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나는 게으른 동시에 부지런하다. 앞서 설명한대로면 게으른 것도 나, 부지런한 것도 나다. 그렇다면 둘 중 어떤 성향이 나의 타고난 본성일까.



본능은 의식과 거리가 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 자신의 본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게으른 사람에 가깝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해야 할 것들이 있음에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속에서부터 마구 올라온다. 정말 내가 부지런하다면, 이런 욕구들을 견디고 할 일들을 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저녁을 먹고 유튜브를 보며 2시간이 넘게 쉬고 난 후부터니까.



그런데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당장이라도 눕고 싶고, 유튜브를 보다가 잠들고 싶다. 하지만 의자에 앉아 노트북으로 이렇게 글을 쓴다. 게으른 내가 매일 퇴근 후 2시간 가까이 시간을 투자해 글을 쓸 수 있는 건 '글 쓰는 게 좋아서'이다. 그것뿐이다. 부끄럼 많고 낯도 가리는 장도연 씨가, 사람들 앞에 서서 망가질 수 있는 이유도 '웃음을 주는 게 좋아서'일 것이다.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단지 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글을 썼다면, 나는 진작 침대에 누워있었을 것이다. 글 쓰는 것이 좋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것이 즐겁다. 내가 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음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게으름을 극복하고 글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꾸준하게 무언가를 하는 걸 매우 힘들어한다. 당연한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데 누가 그것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꾸만 다른 것에 주목한다. 좋아하는 것을 찾을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을 견디려 하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하는 이유를 찾으려 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하려고 하고, 하지 않으면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가 무언가를 꾸준히, 오랫동안 하지 못하는 건 책임감이 없어서가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쉬는 것을 좋아하고 게으른 내가 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당신도 좋아하는 것이 생긴다면 스스로 변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어렵다는 이유로 자꾸만 그것을 뒤로 미룬다면, 당신은 언제까지나 억지로 싫어하는 것을 해야만 한다. 그럴 바엔 하루라도 빨리 좋아하는 걸 찾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삶이 당신에게 빨리 오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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