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배웠다"고 위로하며, 또 제자리

by Quat


“그래도 배웠잖아.” 실패하거나 좋지 않은 결과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종종 이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처음에는 꽤 유효한 말이다. 결과는 나쁘더라도 경험은 남고, 그 경험이 다음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니까. 하지만 이 말이 자꾸 반복될 때는 생각해봐야 한다. 정말 ‘배운’ 걸까? 아니면 ‘배운 척’을 하며 같은 자리를 돌고 있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늘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전혀 다른 선택을 하려 들지 않는다. 늘 똑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같은 유형의 일에 휘말리고, 결국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도 이번엔 좀 나았어.”, “이제는 알 것 같아.”,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어.”



그 말들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배운 게 맞다면, 다음 행동은 달라졌어야 한다. 상황이 비슷해도 이번엔 멈췄어야 했다. 돌아섰어야 했고, 말했어야 했고, 들어야 했어야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또 괜찮다, 배웠다고 말한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편함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는 건 고통스럽다. 변화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책임은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위로’라는 말 뒤에 숨는다. ‘배웠다’는 말은 자책을 막아주는 방패가 된다. 그렇게 ‘괜찮지 않다’는 신호조차 차단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조언도 경고도 들리지 않게 된다.



“나는 내 방식대로 배우고 있어.”, “내가 뭘 모른다는 거야?”, “넌 내 상황을 몰라서 그래.” 이쯤 되면, 위로는 자존감이 아니라 독선으로 바뀌어간다. 반복되는 실수를 돌아보기보다는, 자신은 계속 성장 중이라는 착각 속에 빠진다. 고립은 그렇게 시작된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선택한 말들이 점점 타인의 말에 귀를 닫게 하고, 결국 아무도 곁에 남지 않게 만든다.






자신의 방식만 옳다고 믿는 사람은, 결국 어떤 말도 듣지 않는다. 그에게 필요한 건 또 다른 ‘실패’일 뿐, 대화도 조언도 아니다. 진짜 배움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 앞에 잠시 멈추는 데서 시작된다. 같은 실수 앞에서 “괜찮다”고 말하기보다, 왜 또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을 피하는 사람은 결국 같은 자리를 맴돈다. 마치 그게 성장인 양, 위안인 양 말이다.



다음 글에서는, 그렇게 자기 말만 믿으며 고립되어 가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들은 왜 늘 옳고, 왜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 걸까? 그리고 왜 그런 사람 곁에는 점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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