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처받았으니 괜찮을까?

by Quat


“그럴 수밖에 없었어. 나 상처받았잖아.” 상처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 이 말은 얼핏 들으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누군가를 향한 날카로운 말, 관계에서의 일방적인 단절, 혹은 반복되는 회피를 이 한마디가 모두 정당화해 준다.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말 속에는 미묘한 자기 면제가 숨어 있다. 나도 힘들고 아팠으니, 지금의 내 말과 행동은 이해받아야 한다는 것 말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입고 산다. 관계 속에서 다치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상처가 반복될 때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다고 해서 현실이 나아지는 건 없다. 그저 일시적으로 마음만 편해질 뿐이다.



힘든 연애를 반복하는 이들이 주로 하는 말이 있다. "난 왜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까?" 한 두 번이야 '실수'라고 할 순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반복이 되면, 더 이상 실수라고 말하긴 힘들다. 좋은 사람을 찾고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것 또한 자신의 능력이다. 결국 힘든 연애를 자꾸 한다는 건, 스스로의 선택 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처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그 상처에 머무르는 태도다. 그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사람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신, 바깥을 향해 손가락질하기 쉬워진다. “나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넌 왜 몰라줘?”라던가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야”라는 식으로 상황의 흐름은 외면한 채, 나의 상처를 이유로 남 탓을 일삼게 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을 외부로 미루는 것이다.






자존감은 타인을, 외부의 원인을 탓한다고 올라가지 않는다. 진짜 자존감은 스스로를 직면할 수 있을 때 커지고 성숙해진다. 내가 아팠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그 안에서 어떤 감정이 억눌려 있었는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닌 내 상처를 내가 이해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상처는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모든 것의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인정하되, 그 상처에 책임지는 태도가 우리를 한 걸음 성숙하게 만든다. 자존감이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마주하는 용기에서 비롯되니까. 결국, 자존감이란 말은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 데서 시작된다. “나는 지금, 내 상처를 핑계로 누군가를 밀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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