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를 바라보기

by Quat


내가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잘못된 자존감이 삶에 얼마나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나 자신이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잘 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이는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잘 살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물론 그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이 아주 힘들거나 지쳐있을 땐, 새롭게 무언가를 하기보단 그저 하던 것을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에너지가 든다. 그런데 만약 그런 상태가 몇 년 동안 유지된다면 어떨까?



과거의 나를 떠올려보면 별 것 아닌 것들을 할 때도 즐거워하는 편이었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가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행복 기준'을 모두 통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 대해 '소확행이 잘 되는 사람'이라고 평가를 내리곤 했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친구나 지인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하루를 스트레스받으며 보내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한 주, 한 달,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같은 것들을 반복했고, 여전히 그것들을 좋아하고 즐겼다. 반면 그토록 힘들어하던 친구와 지인들은 전보다 더 좋은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심지어 결혼을 해 아이를 갖기도 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들을 만나 대화를 하면 여전히 그들은 내게 좋은 말들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처럼 그들의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나를 부러워하기보다, 오히려 내가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내가 변함없이 살아가고 있을 동안 그들은 '잘' 살아가기 위해 매일을 애쓰고 있었다. 매일의 반복되는 행복에 눈이 멀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건 나였다.






지금까지 언급한 다섯 가지의 '잘못된 자존감 사례들'은 과거의 나를 돌아보았을 때 느꼈던 것들이었다. 그저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면 그걸로 되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던 어리석었던 나의 모습들. 눈앞의 즐거움에 안주하며 더 나아질 수 있었던 가능성을 스스로 놓쳐버린, 그 시절의 나를 돌아보는 기록이기도 하다.



과거는 이미 흘렀고 그곳에 멈춰있다. 아무리 후회하고 지우려 해도 그것들은 이미 고정되어 있는 내 행동들에 대한 결괏값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 칭하기엔, 과거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미래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을 자존감 '새로고침'이라고 지었다. 지우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바라보고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다.



자존감이라는 건 한번 세웠다고 해서 평생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매일 다듬고 보살피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마치 집안을 청소하는 것과 같다. 매일 청소를 한들 집이 그만큼 더 깨끗해지는 건 아니지만, 며칠만 방치해도 더러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이 누군가에게 자존감을 새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자존감을 새로고침할 수 있는 용기를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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