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단어들을 쓴다. 하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 알고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저 문맥상 '이런 상황에서 이 단어를 쓰면 되겠구나'라고 막연히 쓰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이다. 나도 이 에세이를 쓰면서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처음으로 찾아보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자존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감정. 자신의 가치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좀 더 궁금한 마음에 ChatGPT에도 검색을 해보았다. 검색을 해보니 자존감에 대해 말한 여러 학자들이 있었는데 그중 칼 로저스(Carl Rogers)라는 사람이 정의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자아개념과 실제 경험 사이의 일치도가 높을수록 자존감이 높고, 괴리될수록 낮다." 이 말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간극이 적을수록 자존감이 안정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이 글을 보니 몇 년 전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아마 친한 동생들과 만나 연애와 결혼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나는 30대 초반, 동생들은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만 해도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외모가 뛰어난 것도, 좋은 직장을 다니는 것도, 집안이 부자인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몰고 다니는 차도 없었다. 반대로 생각해 봐도 굳이 나를 만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이런 내 생각을 말했을 때 듣고 있던 동생들이 놀랐던 모습이 기억난다. '굳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라는 대답을 들었지만 사실 그게 현실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었다. 물론 내가 나를 보았을 때 괜찮은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뿐이었다. 거기다 상대방이 나의 성격적인 부분만 보고 계속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자 나만 생각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운 좋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한 번은 아내에게 나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여러 이유를 말해주었는데, 그중 하나가 다음과 같았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오빠는 자기 주제 파악을 잘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있어 쓸데없는 자격지심 같은 게 없어서 좋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으니까. 몇 년 동안 지속된 '셀프 팩트폭행'이 찬란한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칼 로저스의 문구를 언급하긴 했지만 자기 객관화가 잘 된다고 자존감이 높은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아내가 내게 말해준 것처럼, 쓸데없이 자존심을 부리거나 근거 없는 허세를 부린 적은 별로 없었다. 누군가 지적을 하더라도 맞는 말이면 수긍하지만, 아니라면 "그렇진 않다"라고 설명해 주는 편이었다. 아예 나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자신의 생각이 맞는 듯이 말하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그러려니 하고 한 귀로 흘려버리곤 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면 쓸데없는 논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걸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자존감에 대해 사람마다 저마다 믿고 있는 방식으로 그 의미를 해석한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일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무조건적인 자기에 대한 사랑과 존중으로 귀결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자신의 삶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줄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약 내가 몇 년 전부터 나 자신을 마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수 있었을까. 결혼 후 현재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까라고 말이다. 언젠가 타임머신이 상용화된 시대를 살게 된다면, 결혼하기 몇 년 전으로 돌아가 과거의 내게 이 말만은 해주고 싶다. "자기 객관화도 좋지만, 좀 더 열심히 살아보길 바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