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대로 살아야지.”,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 “우린 부족했지만 마음만은 부자였어." 이런 말들은 오랜 시간 우리 사회에서 미덕처럼 통했다. 있는 것을 자랑하는 대신 없는 것을 견디는 태도, 풍요보다는 절제가 더 고귀하다는 믿음이 우리 문화 깊숙이 스며 있다. 그래서일까. '가난하지만 성실한 사람'은 미담의 주인공이 되지만, '부를 추구하는 사람'은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처럼 묘사되곤 한다.
문제는 이 인식이 자칫하면 결핍 자체를 미화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삶이 부족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것을 견디는 사람의 자세는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궁핍한 상태 자체가 미덕이 되는 건 아니다. 결핍은 감내할 수 있는 현실이지, 지향해야 할 이상은 아니다.
며칠 전 SNS에서 한 글을 봤다. 한 중년 여성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년 넘게 아이들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외식도 안 하고, 해외여행은 꿈도 안 꿨어요. 하지만 빚 없이 살았다는 게 자랑이에요." 그 말엔 분명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 삶은 분명 누군가에겐 이상적인 태도로 읽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말 속엔 ‘견딘 삶’이 얼마나 길었는지, 무엇을 포기해야 했는지가 묻어난다. 자식들과의 추억,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 경험과 기회 같은 것들. 그 모든 것을 ‘절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수많은 가능성을 내려놓은 삶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의 결핍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길들여진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은데’라는 비교는 언제나 우리를 고개 숙이게 만든다. 하지만 그 말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나은 삶을 꿈꾸지 않게 된다. 현재를 견디는 힘은 중요하지만, 그 현재에 안주하라는 강요는 위험하다.
궁핍은 누군가의 자랑이 되어선 안 된다. 궁핍을 견디는 사람이 위대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 궁핍한 상태 자체를 위대하게 여기는 사회는 위험하다. 진짜 미덕은,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용기다. 검소함과 궁핍함은 다르다. 검소는 스스로 선택한 단순함이지만, 궁핍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함이다.
우리는 이제야 그 차이를 말해야 한다. 궁핍함은 미덕이 아니다. 그건 참고 견뎌야 할 현실일 뿐, 찬양해야 할 이상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욕망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 그런 사회가 진짜 ‘따뜻한’ 사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