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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Jun 02. 2022

'진아,혜지'말고 '혜지,진아'는 왜 안돼?


며칠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웹드라마 채널 하나를 발견했다. 채널의 이름은 "짧은대본". 유명하진 않지만 매력 있는 마스크를 가진 배우 여럿이 등장하며, 일상 속에서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상황 또는 감정을 짧은 시간에 압축해서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오늘은 그중 한 편의 내용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혜지'와 '진아'는 동갑내기 친구다. 그런데 요즘 혜지에겐 고민이 하나 있다. 주변 친구들이 자신과 진아를 묶어 일명 '진아혜지'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어떤 친구도 '혜지진아'가 아니라 '진아혜지'라고 그들을 부른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진아 뒤에 붙여서 말하는 것을 들으며, 혜지는 자신이 진아와 동등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마치 진아의 들러리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다 혜지는 소개팅 자리에서 알게 된 '대남'과 통화를 하던 중, 이런 생각을 터놓게 된다. 그 누구도 진아와 자신을 부를 때 '혜지진아'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함께 있는 친구들 때문에 급하게 통화를 종료해야 할 상황에 놓인 대남은 그녀의 말을 듣고는 급하게 두 단어를 말한다. "애플망고. 몽키바나나."


 




대남이 외친 이 두 단어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애플망고와 몽키바나나. 이 두 가지 과일은 공통된 특징이 있다. 두 가지 단어가 합쳐서 만들어진 합성어라는 것. 하지만 두 합성어 모두 본질적인 의미는 앞의 단어가 아니라 뒤의 단어에 있다. 애플망고는 망고의 한 종류이며, 몽키바나나 또한 바나나 종류 중 하나이다. 즉, 대남은 혜지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진아혜지'라는 말이, 혜지가 진아보다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 간의 관계에서 혜지라는 존재가 더욱 도드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얼마나 센스 있고 멋진 표현인가!






친한 사이일수록 이런 생각을 한 번쯤 하게 될 때가 있다. 지금까지 자신은 상대방과 '친구'라는 동등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마치 자신이 친구보다 못하다는 취급을 할 때도 있다. 한 명이 말할 땐 괜찮지만 여러 명이 비슷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친구와 나를 하나씩 떼서 비교하기 시작한다. 외모부터 시작해 학벌, 집안, 직장, 성격 등으로 말이다. 분석이 끝나면 그동안 친구와 있었던 많은 일들을 떠올려본다. 좋았던 추억부터 다퉜던 순간까지.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순간부터 친구를 만날 때 조금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만나게 된다. '과연 너는 나를 정말 친구로 생각하는 걸까.' 평소와 비슷한 친구의 태도에도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이런 시기를 잘 넘긴다면 전보다 더 단단한 관계가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서서히 멀어지는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친구 관계는 완벽하게 평등하지 않다. 조금 더 주장하는 사람과 그것을 들어주는 사람. 리드하는 사람과 맞춰주는 사람. 한쪽이 '강'이라면 다른 쪽은 상대적으로 '유'의 성질을 가진다. 우리 모두 '진아'일 수도 있고, '혜지'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장단점은 있고, 무엇이 좋고 나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지금 혜지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 누구라도 '들러리' 역할을 타고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짜증을 받아주고, 힘들 때 언제든지 달려 나가야 하며, 항상 챙겨줘야 하는 건 아니다. 10년 지기 친구라 해도 한 순간의 일로 남남이 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즉 오랫동안 알아왔고, 쌓인 추억이 많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이해해줘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친구가 당신의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을 때, 당신은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친구와의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 참고 넘어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신이 서운하고 짜증 나는 감정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친구를 아끼는 마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보자. 당신이 친구를 아끼는 마음만큼, 친구 또한 당신을 진심으로 생각했다면 그런 행동을 했을까? 당신이 그것을 싫어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당신의 친구가 정말로 당신을 아끼고 있다면, 당신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사과할 것이다.  



당신이 친구를 사랑하는 만큼, 친구 또한 당신을 사랑할 권리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말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친구가 당신의 말을 듣고 오히려 자신이 서운하다는 식으로 말하거나 화를 낸다면, 당신 또한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을 그냥 넘겨버린다면 스스로가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을'을 자청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후에 또 비슷한 상황을 겪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도 친구니까"라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 친구라서 모든 걸 이해해줘야 한다는 건 어디에도 정해져 있지 않다. 당신이 친구를 생각하는 것처럼, 상대방 또한 당신을 배려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친구인 것이다. 당신 스스로 들러리임을 자처하지 마라. 스스로 들러리처럼 행동하면서 서운함을 느끼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선택이 애매해질수록, 힘든 것은 당신뿐이다. 혹시 요즘따라 유난히 친구 관계로 힘들어할지 모를 당신에게 위로의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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