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뭔가를 하기 전, 깊이 고민하기보단 일단 부딪혀보는 편이다. 여행을 갈 때가 대표적인데 대부분 숙소만 미리 예약을 해두고 나머지는 여행 당일에 정하곤 한다. 어딜 갈지, 뭘 먹을지 등 그날의 상황과 나의 취향에 맡기는 것이다. 보통 계획, 준비, 실행이라는 3단계를 거친다면 나는 실행, 경험, 조정이라는 조금 다른 3단계를 거쳐 일을 시작한다.
무작정 시작하다 보면 실패를 겪을 때도 많다. 몇 년 전, 12월에 대구에서 강릉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새벽에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대략 4~5시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1시간 정도는 즐거웠지만 이후부턴 반복되는 풍경으로 인한 지루함과 허리통증으로 '빨리 내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알찬 여행을 했다고 보긴 힘들었다. 한 군데를 들른 후에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기다려야 하는 시간도 꽤나 걸렸다. 사전정보 없이 대중교통만으로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가기엔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꼭 최악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때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하고 시설 또한 깔끔했다. 저녁엔 숙소를 찾은 다른 손님과 함께 근처 술집으로 가 서로 대화를 나눈 것도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산 강릉 지역 맥주의 맛도 괜찮았다. 안목 해변의 카페에서 바라본 겨울 바다의 노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가 되었고, 신사임당의 생가로 알려진 '오죽헌'을 방문한 것 또한 색다른 추억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통해 좋은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완벽하게 잘 짜인 여행'도 좋지만 '내가 즐거운 여행'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신중한 면이 있다는 건 분명 좋은 것이다. 위험은 되도록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으니까. 다만 매사에 너무 신중하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표현하거나 행동한다고 해서 원하는 걸 모두 가질 순 없지만 '해봤자 어차피 안되잖아'란 생각을 갖고 살면, 원하는 걸 가질 가능성 자체가 0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시작하는 태도는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적당히'라는 건 뻔한 위험을 무릅쓰라는 말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한 채 하라는 말과도 다르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선택하는 결단력과, 남은 건 흘려보내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거기에 따라오는 위험을 저울질해 보고,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면 도전해 보는 것. 도전한 뒤 예상치 못한 문제들에 대해선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 그 외에 도저히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선 흘려보내는 것. 이것이 '적당히'라는 말에 담긴 진짜 의미라고 생각한다.
인생엔 언제나 타이밍이 있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시기, 일을 잘할 수 있는 시기, 연애를 잘할 수 있는 시기 등등. 물론 이 시기를 놓친다고 해서 아예 무언가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이밍을 놓치고 나서 다시 무언가를 하려고 들면, 전보다 몇 배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렇게 하더라도 원하는 걸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배우고 싶은 걸 배워보는 것, 호감이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것, 떠나고 싶은 곳으로 떠나보는 것. 우리가 그것을 할지 말지 고민하는 이유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지'란 생각 때문이다. 내일도 아니고 당장 몇 시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데도 말이다. 머뭇거리는 사이 기회는 지나가지만, 움직이는 순간 새로운 길이 열린다. 생각은 잠깐, 행동은 바로. 그게 내가 믿는 '적당한 삶'의 방식이다.